<그 노래가 내게 고백하라고 말했다>를 읽고
언젠가 이경 작가님의 피드에서 ‘초록머리’와의 인연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이번 책의 정서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맨날 허허실실 농담을 늘어놓거나 라임을 맞춘 말장난을 가볍게 던지지만 작가님의 모든 책을 읽은 나로서는 수많은 문장에 담긴 작가님의 가벼운 우울과 진득한 허무를 모를 수는 없다. 한 꺼풀 뒤에 숨은 작가님의 여린 심성과 음악으로 단련된 감수성이 언젠가는 드러나고 말거라 생각했다. 첫 책으로 내고 싶었다던 음악 에세이를 기다린 이유이기도 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경 작가의 첫 꿈이 드디어 세상과 만났다. 그렇게 오랜 시간 닳도록 어루만지며 곱씹고 매만진 글에는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영혼이 깃들게 되는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책은 독자를 매료시키는 힘을 갖게 된다. 거기에 적절한 BGM까지 더해졌으니 이건 약간 반칙 아닌가. 음악은 순식간에 주변 공기를 바꾸고 앞에 앉은 상대를 조금은 연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 말이다. 이경 작가의 애정과 필살기가 모두 담겨서 그런지 매꼭지가 새롭고 언급된 음악마다 궁금해서 찾아 듣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의 추억을 소급하는 화학작용을 이끌어낸다.
1987년 11월 2일 유재하의 사망 소식으로 웅성대던 복도, 음악 하는 남자친구 따라 처음 가본 세운상가, 그 친구 때문에 귀에서 피나도록 들었지만 지금은 다 잊은 지미 핸드릭스, 레드 제플린, 너바나, 메탈리카, 건지 앤 로지스의 음악들. 그 친구가 연주해 주던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 다니던 교회 목사님의 사위였던 ‘빛과 소금’의 장기호 님, 운전하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시와 그림’의 ‘이제 역전되리라’를 듣고 투병 중인 아빠 생각에 펑펑 울던 2016년 7월의 어느 날... 이렇게 쓰고 보니 ‘음악을 내 삶에서 도려내는 순간, 스무 시절의 내 삶도, 그 많던 아름다운 처음의 기억들도 함께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을 테니까’ p31 라던 책의 문장이 더욱 와닿는다.
매일밤 ‘별밤’을 함께 듣고 유재하의 소식에 같이 울던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음악 취향에 큰 영향을 준 첫 남친과는 헤어진 지 오래, 한국을 떴는지 그 어떤 근황도 알 수 없지만 에릭 클랩튼이 연주하는 ‘Wonderful Tonight’의 전주 부분이나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들을 때면 여지없이 그때 그 순간으로 가고 만다. 모든 관절은 부드럽게 움직이고 보송보송 솜털마저 아름답던, 세상이 만만하고 두려울 것 하나 없던 나의 청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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