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마리에처럼

시시콜콜한 나의 이사 이야기 - 6 D - 180

by 정희

D - 180



넷플릭스에서 방송하는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프로그램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프로그램이라서 그녀만의 독특한 정리법은 귀동냥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정리해야 할 물건을 가슴에 품어보고 설레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미련 없이 버리라는 명쾌한(?) 해법 말이다. 그녀는 이 방법으로 많은 이의 일상을 정리해줬고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그녀의 이름을 딴 ‘곤마리하다(to konmari)'는 정리한다는 뜻의 동사로 사전에까지 등재되었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 짐 정리를 위해 나도 곤마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창 아이들 키울 때는 연령에 따라 필요한 물건을 사들이다 보니 집이 늘 포화상태였다. 결혼 후 2번의 이사를 하면서 묵은 짐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지만 뭐하나 쉽게 버리지 못한 채 그때마다 모두 끌고 다녔다. 테트리스 하듯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잘 꽂아놓으면서 마치 정리의 달인이라도 된 양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그동안은 같은 아파트, 비슷한 평형으로 옮긴 거라 복사하기, 붙여 넣기 수준의 이사 같지 않은 이사를 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 이사는 멀어진 거리만큼이나 평형도 구조도 완전히 달랐다. 아이들도 다 커서 자잘한 짐을 가뿐하게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결혼한 지 20년, 그동안 쌓인 물건 중에 첫 번째 정리대상은 ‘옷’. 곤도 마리에는 우선 갖고 있는 물건을 모두 꺼내 한 군데에 쌓아보라고 했다. 호기롭게 옷장 속의 옷을 모두 꺼내 거실에 쌓기 시작했다.


‘어라, 우리 집에 옷이 이렇게 많았나?’


착착 접어뒀을 땐 몰랐던 옷의 부피가 대단했다. 아직 꺼내지 않은 옷이 5단 서랍장으로 두 개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도 이왕 쌓아 놓았으니 곤도 마리에가 했던 방식대로 한 번쯤 해보고 싶어서 10개의 서랍 속에 숨어있던 옷까지 낑낑대며 모두 꺼냈다.


거실은 금세 동묘시장 좌판으로 변했다. 발 디딜 틈도 없게 널브러져 있는 여자 둘, 남자 둘의 옷더미 앞에 서니 정리도 하기 전부터 지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곤도 마리에를 너무 띄엄띄엄 생각한 모양이다. 하루에 몰아서 할 게 아닌 일을 섣불리 건드렸다는 날카로운 직감이 들었지만, 다시 접어 넣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그래, 시작이 반이니까 우선 밀고 나가보자’ 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옷을 하나 집어서 곤도 마리에처럼 가슴에 품어봤다.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수영복을 시작으로 분명 잘 빨아 놓았는데도 얼룩진 티셔츠까지는 고민할 필요 없이 OUT 됐다. 그렇게 연달아서 몇 장은 쉽게 버렸다. 하지만 결혼 예복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이젠 꽉 껴서 입을 수 없는 지경인데도 결혼을 앞둔 설렘이 떠올라서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대학 입학 기념으로 친정오빠가 사준 청바지도 남매라는 단 하나의 증거(?) 같아서 버리기 어려웠다. 한껏 늘어난 티셔츠와 무릎의 자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츄리닝(트레이닝이란 말은 절대 어울리지 않을 법한)도 시골에서 일할 때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도대체 설레지 않는 옷은 무엇이며 사연 없는 옷은 뭐란 말인가.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설렘 지수를 진단하기도 전에 버리지 않을 이유가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통에 처분할 옷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방송에 나왔던 의뢰인들도 곤도 마리에가 떠나고 나면 바로 후회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버린 옷들을 주섬주섬 다시 가져왔을지 모른다는 어이없는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리도 못하고 옷만 만지작거리던 틈을 타고 『관계의 물리학』 이란 책이 떠올랐다. 작가는 그 책에서 물건 정리 습관에 대해 친구가 내린 결론을 공개하며 망설임의 이유를 정리했다.


“사람이 소유한 물건은 딱 두 종류로 나뉜다. 실생활에 필요해서 구입한 물건과 사용 시효가 이미 지났으나 사연이 담겨 있는 물건. 친구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물건을 정리하려면 결국 추억을 정리해야 한다고. 사연이 있는 물건부터 내다 버릴 수 있어야 비로소 필요한 물건만 남게 된다고.” - 『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p27.

곤도 마리에가 말한 ‘설렘’이란 결국 그 물건과 함께한 추억이 불러오는 마음의 요동 아니겠는가. 그러니 추억을 정리할 수 있을 때 정리도 가능한 것이겠지. 지난 추억을 끝끝내 붙잡고 싶은 나의 상황은 그 어떤 정리도 끌어들이고 싶지 않게 만들었으니 정리가 어려울 수밖에.


그렇다고는 해도 몇 년간 입지 않은 옷을, 있었는지도 몰랐던 옷을 정리하지 못하는 건 추억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미련함이었다. 생각해보면 놓아 보내지 못하고 움켜쥔 것은 옷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물건과 관계가 갖고 있는 유통기한이라는 자연의 법칙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저 길게 이어가는 게 좋은 줄 알고 잔뜩 끌어안고만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 옷은 내 맘대로 버릴 수도 없으니 조만간 다시 정리해야 했다. 결국 색이 바랜 티셔츠 몇 장과 도저히 잠가지지 않는 바지 몇 개, 하도 안 입어서 곰팡이 얼룩이 생긴 외투 몇 벌만 겨우 보태서 버렸다. 나머지는 옷장과 서랍장에 다시 넣느라 몸만 축났다. 하루 종일 비워낸 게 고작 서랍장 한 칸만큼이라니. 힘은 힘대로 들었는데 정리는커녕 옷 구경만 실컷 한 것 같아서 도대체 뭘 했나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걸 모두 꺼내본 것은 시각적으로 꽤 자극이 됐다. 버리고 정리하는 것에 비해 사들이는 게 많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쌓이는지 늘 막연했다. 그 실체를 죽 늘어놓고 한눈에 보니 불어난 살림이 실감 났다. 버리는 걸 무척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는 주제 파악은 덤이었다. 버리는 게 어렵다면 사는 것부터 줄여야 했다. 의식의 흐름은 ‘내 옷부터 사지 말아야지’로 흘러서 딱 1년만 이 옷으로 지내보자는 결심이 남았다. 마음만 먹었을 뿐인데 어디선가 돈 굳는 소리가 솔솔 들려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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