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의 트랙에서 내려오기

시시콜콜한 나의 이사 이야기 - 14 D - 80

by 정희

D-80





이사를 앞두고 자꾸 움츠러들던 그때, 큰 아이의 입시 일정이 겹쳐 있었다. 이사 준비만으로도 벅찬 시기에 입시와 관련된 여러 일정을 동시에 챙기느라 멀미 나는 여름과 가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애쓴 노력이 무색하게 수시모집 결과, 최초합은 하나도 없이 5개의 예비번호를 받아 들게 됐다. 이어진 추가 합격 기간 동안 줄어드는 예비번호를 확인하고 연락을 기다리느라 어느 때보다 길고도 긴장된 2주를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수시 전형 마감시간, 2018년 12월 26일 21시.


간절히 기다렸던 추가합격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아이의 코앞에서 5개의 학교가 문을 닫아버렸고 딸은 오래 울었다. 속이 상한 남편은 나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한 마디를 기어이 던졌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는 일을 왜 하는 거니?”


남편의 그 말은 ‘입시 결과에 책임은 너에게 있다, 왜 아직도 정시 전형에 대한 파악이 안 되어 있는 거냐, 그렇게 바쁘면 일을 그만두고 평생에 한 번뿐인 아이 입시에 좀 더 집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그침으로 들렸다. 그 말과 함께 간신히 틀어쥐고 있던 정신줄 하나가 툭 끊겼다. 아이 마음에 나의 속상함까지 보태지 않으려고 간신히 참아온 눈물이 그 말을 핑계로 줄줄 흘러내렸다. 봇물 터지듯 서운한 감정이 쏟아졌고 우리 부부는 결국 크게 다투고 말았다. 위로만으로도 부족할 아이 앞에서 눈물 뿌리며 싸우는 부모라니. 딸은 밤새 복통과 구토에 시달리며 부모에게 받은 상처와 실패의 아픔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아픈 아이를 돌보며 놓쳤던 정신줄을 다시 끌어와 묶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잖은가. 이제 정시 모집에 집중해야 했다. 물론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수시전형에 집중한 탓에 수능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하향에 하향을 거듭해야 했다. 결국 3장의 원서 중 3순위로 생각한 학교에 합격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입시 일정이 모두 끝났다. 하지만 하나도 홀가분하지 않았다. 장학생으로 합격했지만 기쁘기는커녕 터무니없이 낮춰서 지원했다는 아쉬움만 커졌다. 딸아이와 비슷한 성적과 비교과를 갖춘 친구들의 성공적인(?) 입학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억울한 마음이 차올랐다. 딸아이도 같은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딸에겐 위로와 격려가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그걸 알면서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그러기엔 내 마음의 무게가 너무 컸다. 주변의 시선과 소문을 신경 쓰느라 내 마음 하나 보살피기도 힘겨웠다. 그렇게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 성숙하지 못한 부모로서 느끼는 미안함에다 빈껍데기만 남았다는 상실감까지 더해져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 감정에서 벗어날 방법을 도무지 찾지 못했다.


별 수 없이 마음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1-2년의 연애를 끝내도 몇 달은 아픈 법인데 12년의 노력이 아쉽게 끝났으니 오죽할까 싶었다. 게다가 13년 동안 열정을 쏟아부었던 일을 그만둔 것까지 겹쳤으니 마음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상황과 불안한 마음을 온전히 인정하기로 했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잠잠해지는 듯하다가도 꼬리를 무는 생각이 나를 다시 괴롭혔다.


그렇게 이어진 생각의 끝에 ‘경쟁’이란 단어가 덩그러니 남았다. 나의 커리어와 큰아이의 학창 시절이 겹친 10여 년 동안 경쟁의 트랙을 함께 달렸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내가 책 수업을 시작할 즈음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엄마도 같은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같은 회사 동료이면서 동갑내기 딸을 둔 엄마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가까워졌다. 이따금 미묘한 경쟁의식이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원만한 관계가 어긋날까 봐 모른 척 넘어가며 관계의 균형을 유지했다. 절묘하게 맞춰가던 균형은 그분의 동생이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오고 같은 일을 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생겼고 동생이라는 완전한 아군이 생긴 그 분과는 점차 멀어지게 됐다. 아이들도 학년이 올라가면서 소소한 경쟁이 시작되었고 원치 않았지만 교사로서의 능력이 곧 내 아이의 능력으로 가늠되는 평판의 도마 위에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경쟁에 밀리고 싶지 않은 부담과 좋은 엄마는 되고 싶은 욕심 사이를 오가며 은근히 아이를 재촉했다. 숨길수록 아이에 대한 욕심이 올라왔다는 걸, 그래서 자주 들켰다는 걸 트랙 위에 있을 때는 몰랐다.


이 곳이 뛸만한 트랙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지친 아이를 뻔히 보면서도 아이를 위한 일이라는 어이없는 거짓말로 나를 속여 왔다. 그렇게 나를 재촉하며 보낸 시간 동안 나는 많이 닳고 해졌다. 트랙에서 내려온 지금에서야 힘겨운 우리가 보였다. 잠깐 멈춰 지친 다리를 쉬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만 그랬을 뿐, 변화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트랙에서 내려오는 것은 포기이며 패배라고 스스로 정해버렸기 때문이다. 내 결심으로 할 수 없었던 그 일을 이사 덕분에 하게 됐다. 그렇게나 피하고 싶던 ‘이사’는 나를 트랙 밖으로 밀어내 준 고마운 기회였다.


이제야 우리는 각자의 트랙 위에 서게 됐고 자기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익히는 중이다. 적당한 거리가 생기고 나니 있는 모습 그대로의 딸아이가 보였다. 자기만의 길 위에 올라선 딸아이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쉬운 결과를 받았지만 낙심하지 않았다. 엄마의 조바심을 견뎌낸 딸아이의 무던함이 무엇보다 고마웠고 돌아보면 아찔한 기억 속에서 마음의 건강을 지켜낸 것이 다행스럽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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