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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면 알게 된다

영화 <두 교황>

by 정희




몇 년 전 서유럽에 다녀왔다. 미지의 경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은 있었지만 매스컴이나 책을 통해서 수백 번은 보아왔던 곳이니 새로울 게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곳에 다녀온 뒤, 나는 예전의 나와 미묘하게 달라졌고 그곳도 더 이상 예전의 바티칸 성당이, 에펠탑이, 루브르가 될 수 없었다. 그곳은 나의 모든 감각을 자극하고 고유한 분위기와 색감으로 일상을 침범해왔다.

그래서 이제는 TV 속에서 피렌체를 달리는 연예인을 보며 햇살과 공기를 함께 느낄 수 있고 그들이 거니는 샹젤리제 거리와 바토무슈 유람선 위에 함께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한다.

마치 4D TV로 시청하는 기분이랄까.


영화 ‘두 교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퇴임과 새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견 대립과 성직자로서의 내적, 외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퇴임과 선출이 일어나게 된 배경인 가톨릭 교회의 부정과 의견 대립의 갈등에 집중하기보다 두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와 번뇌를 세밀하게 공들여 보여준다. 그 와중에 그보다 더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바로 ‘시스티나 성당’이다.

여행 중 방문했던 곳이지만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라 눈으로만 부지런히 담았다. 천장과 사방을 가득 메운 작품에 압도되어 온몸을 맡겨버렸던 곳.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많은 이들이 고개가 뻣뻣해질 때까지 천장만 바라봤던 곳. 구원의 은혜와 변치 않는 사랑에 감격하고 대가의 미술품 앞에 내내 감동했던 곳이다.

갈등 중에 있던 두 교황은 바로 그곳에서 만났다. 몇 마디 오가지 않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그곳에 다녀오기 전에 이 영화를 봤더라면 ‘이렇게 쉽게 화해를? 그게 가능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곳에 다녀온 이상, 이제는 알 것 같다.

시스티나 천장화 아래에 서면 어떤 마음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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