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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자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읽고

by 정희

나는 우리의 사생활에서 돈과 섹스의 영역을 제외하고 독서의 영역보다 더 확실한 정보를 얻기 힘든 영역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P14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듯하지만 그보다는 책에 관해서라면 뭐라도 아는 척하고 싶어 하는 ‘심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총체적 시각이라느니 내면 도서관이나 유령 책이라는 그럴싸한 이론을 들이밀고 있지만 책을 통해 지식인의 끄트머리에라도 매달리고픈 나의 위선을 들춰낸다. 망각을 풍요화의 과정이라 하고 독서는 곧 비독서의 시작이라는 주장이 다소 억지스럽게 보이다가도 실제로 읽었는지 구체적으로 캐내지 않는 독서인들의 암묵적 규칙이나 저자 앞에서 전문적인 질문을 던지며 약간의 우월감과 즐거움을 얻는 독자의 심리에 대한 부분에선 피에르 바야르의 시니컬하지만 정확한 진단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통해 내 기억을 돕기 위해 시작한 북리뷰가 언제부턴가 부담이 된 이유를 알게 됐다. 그건 좀 더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어진 나의 변심 때문이었다. 이 책은 일생동안 노력해도 일치시킬 수 없는 그 이미지로부터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우리의 내면을 억압적으로 지배하며 우리 자신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 것, 즉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만이 자기 진실에 이를 수 있다’ p174 는 문장을 통해 위선으로부터 탈출해야 하는 이유를 일러준다.


다른 이의 작품을 습관적으로 읽고 작은 기록을 부담스러워하느라 정작 ‘나의 목소리’를 주워 담지 못하는 패턴에 답답함을 느끼던 때라 그런지 이 책이 준 또 하나의 메시지 역시 더없이 반가웠다. 바로 ‘창작’에 대한 것으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담론은 우리를 창조적 과정 한가운데에 위치시킨다는 것, 다른 사람의 말의 무게에서 해방된 독자가 자기 자신의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이 얼마나 후련한가.


‘독서와 창작 사이에는 일종의 이율배반이 있다. 모든 독자는 다른 사람의 책에 빠져 자기 자신의 세계로부터 멀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p234 는 문장에서 보듯 ‘적당한 거리’는 사람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책과 창작자 사이에도 반드시 끼어들어야 할 요소가 틀림없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을까 봐 평문할 책을 읽지 않는다는 와일드 오스카의 생각에도 과한 면은 있지만 내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다른 이의 좋은 글은 그것대로, 의미 없는 글은 또 그것대로 영향을 주고받으니 말이다.


피에르 바야르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 중 내가 느끼고 건져 올린 생각을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에 빗대어 마무리해본다.


논하라, ‘햄릿’을 읽어본 적 없는 티브 족처럼

솔직하라, 롯지의 게임에 참여한 하워드 링봄처럼

자유하라, 독서를 둘러싼 의무 따윈 집어던진 채


“너의 글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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