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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Oct 29. 2022

영점조준

원하는 과녁이 아닐지라도


군대 간 아들이 편지를 보냈다. 훈련소 기간 중에 보낸 두 번째 편지였다. 매일 조금씩 썼는지 날짜가 다른 3일 치 편지와 작은 구멍이 뽕뽕 뚫린 사격 결과지 두 장이 함께 들어있었다.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특히 사격에 관해서라면 자부심 가득한 남편이 그 결과지를 보더니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잘 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편지 곳곳에서 사격 결과에 대해 뿌듯함을 숨기지 못했다. 의기양양해하며 편지와 함께 사격 결과지를 넣었을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아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어서 나는 무척이나 반가웠다. 시간에 쫓기듯 급하게 써 내려간 아들의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영점 조준’이란 단어를 처음 발견했다. 사격 전에 조준점과 탄착점이 일치하도록 가늠자와 가늠쇠를 조정하는 걸 뜻하는 군대 용어였다. 여기서 말하는 ‘영점’은 말 그대로 총알이 떨어지는 영(零) 지점이라는 의미로 영점 조절(zeroing)은 이 영점 거리(zero distance)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나는 좀 다르게 이해했다. 목표물을 제대로 조준하기 위해 無로 돌아가는 것, 모든 조건을 덜어낸 zero 상태로 만드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일과 관련된 나의 상황이 처음 보는 단어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그즈음의 나는 경제활동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제안받는 일마다 무턱대고 해내던 중이었다.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일하는 보람과 즐거움이 충분한지, 그것도 아니라면 시간과 노력에 합당한 수입을 보장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사회와 연결된 끈을 놓지 않으려고 부족한 체력이나 마뜩잖은 보수도 감수하며 때깔만 좋은 프리랜서 일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토정비결이나 점 같은 건 본 적 없지만 만약 그런 운세가 들어맞는다면 상반기엔 일복이 팡팡 터진다고 하지 않을까 싶게 수업 제안이 몰렸다. 그중 새로 오픈하는 학원의 전임강사 제안을 받아들여 두 달 뒤 출근하기로 했다.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간의 경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었고 더 늦기 전에 좀 더 안정적으로 사회에 발 하나를 걸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15년 차 프리랜서에게 출퇴근 있는 삶이 좀 버겁겠지만 체력만 버텨준다면 당분간은 일 걱정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도 좋았다. 직장이 결정되자 일상에 활력이 돌았다. 특별한 일 없이 하루를 보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죄책감은 사라지고 지금 누리는 여유는 곧 다가올 빠듯한 일상에 대한 보상처럼 여겨졌다. 나는 곧 일할 사람이라는, 엄밀히 말하면 돈을 벌 거라는 사실에 은은한 자부심이 깔렸다.

     

동시에 더 이상 글쓰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후련함이 더해졌다. 글로써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는 기분이랄까. ‘확실한’ 일을 할 사람이니까, 글 쓸 시간 내기 어렵게 바쁠 테니까, 무엇보다 일이 곧 나를 증명해줄 테니 ‘굳이’ 힘주어 쓸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았다. 업무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고 당분간 시간 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짬짬이 지인을 만나느라 매일 분주했다. 앞으로 몇 년은 여행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항공사 마일리지를 털어 여행도 다니면서 출근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하지만 나의 준비가 무색하게 난데없이 학원 측의 소송 문제가 불거졌다. 도덕성과 관련된 사안이라 출근을 강행할지 고민되었다. 그대로 진행하는 것과 멈추는 것을 저울 위에 올려보았다. 흔들리던 저울이 이내 멈추는 쪽으로 기우는 걸 보며 결국 일의 기준은 삶의 가치를 벗어날 수 없음을 다시 확인했다.

     

그렇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글과 멀어진 채 보낸 몇 달이 그렇게나 홀가분했다.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일에서 벗어나자 내 글에 더 이상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이렇게 속 편한 걸 왜 그리 붙잡았는지. 이참에 글쓰기에 끌려가던 미련도 깨끗이 정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매일 분주했으나 어느 한 날 충만한 기분으로 잠들지 못했다. 글쓰기가 떠난 빈자리엔 ‘과연 그 마음에 합당할 만큼 노력해보았나?라는 질문이 자꾸 나타났다. 치열하게 글 썼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새로운 일을 다시 하게 되더라도 자꾸 나타나는 그 질문에 무슨 답이든 내놓아야 했다. 장전된 총알을 쏘기만 하면 되는 타이밍이었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나를 막아섰던 그 질문에 내놓을 답을 고민했다. 난데없이 다가온 '영점 조준'의 시간, 일과 관련된 모든 끈을 놓고 제로 베이스 위에 서자 내가 맞춰야 할 과녁이 점점 다가왔다. 피하고 싶었지만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영점이 순간 선명해졌다.  


그렇게 맞이한 여름. 원래 예정대로라면 오늘의 나는 이른 점심을 먹고 출근해서 2-3타임의 수업을 했을 것이다. 클리닉 수업 때문에 늦어진 퇴근을 속 쓰려하며 때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때웠을 것이다. 영점 조준을 마친 지금의 나는 직장 대신 카페로 출근한다. 단 한 줄이라도 쓰고 말리라 다짐하며 노트북을 열고 하얀 백지 앞에서 막막한 시간을 견딘다. 글이 풀리지 않아 막다른 길에 갇힌 것 같을 땐 원래의 계획대로 출근했을 나를 떠올린다. 상상뿐인데도 얼른 퇴근하고 싶어 진다. 그렇다면 나의 영점 조준은 정확한 지점에 맞춰진 거겠지.       

제대로 맞췄어도 쓰기 싫은 시간은 여지없이 찾아온다. 그 시간을 견디며 이슬아 작가가 만난 일하는 어른들을 떠올린다. 그분들의 근면과 성실을 보며 글 쓰는 나의 일상도 닮길 바란다. 매일 새벽 출근하는 응급실 청소노동자 이순덕 님과 주말이나 공휴일도 없이 날마다 버섯을 돌보는 농업인 윤인숙 님처럼 나도 매일 흰 종이 앞에서 쓰기 싫은 시간을 견딘다. 그분들의 끈기와 꾸준함이 나에게도 스며들어 기본에 충실한 매일을 보낸다면 글쓰기가 나의 일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짐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를 글 쓰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의미와 효용을 따지는 불안한 마음일랑 벗어던지고 날마다 새 마음으로 갈아입는다. 나의 기본을 매 순간 영점에 조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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