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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Oct 29. 2022

발레

반백살에 발레라니

          

발레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50분 동안 내 몸에만 집중한다. ‘츠읍 츠’ 횡격막 호흡을 유지하며 목을 세운다. 가슴통과 엉덩이를 조이고 뒷날개 뼈는 아래로 가슴은 위로 향해 선다. 골반은 바르게 세우고 머리는 위로 위로 풀업. 엉덩이부터 발뒤꿈치까지는 틈 없이 모두 닫는다. 몸은 하나인데 상체와 하체, 앞판 뒤판의 방향이 모두 달라야 한다. 비유가 좀 그렇지만 거의 능지처참 수준의 방향성이랄까.      


매트 운동을 시작으로 (barre) 포지션을 거쳐 센터 운동으로 마무리하는 동안 호흡이 가빠지고 등과 이마가 촉촉하게 젖어든다. 온몸이 열기로 가득  오르면 머릿속은 차갑게  비어버린다. 생각이란  끼어들 틈이 없다. 어느  부분이라도 허투루 했다간 발끝과 손끝과 정수리가 여지없이 말한다. “잡념 들어왔어요라고. 다섯 가지 포지션과  가지 포지션을 번갈아 잡을 때마다 온몸의 근육과 힘줄이 반응한다. 제자리에 서있거나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이 전부인데도  어떤 수업보다 역동적이다.       

    

주변에 발레를 업으로 삼은 사람은 물론이고 취미로 배우는 사람조차 없었지만 나의 첫 장래희망은 발레리나였다. 처음 발레리나를 보았을 때의 강렬한 기억도 없고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의문투성이인 그 꿈을 오랫동안 동경해왔다. 하지만 하늘은 내게 작은 두상과 긴 팔다리는 물론 바람 불면 날아갈까 싶은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나의 체형을 정확히 파악할 눈치는 주셔서 그저 꿈으로 남기는 현명한 선택을 하게 했다. 그 각성 덕분에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꽁꽁 숨겨둔 비밀 같은 꿈으로 남겨 두었다.

     

그랬던 내가 반백살에 발레라니.      


이렇게나 난데없고 늦은 시작은 지난 일 년간 겪은 두 번의 사고와 긴 와병 생활에서 비롯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지낸 긴 시간은 숨어있던 그 꿈을 스멀스멀 불러들인 것이다. 멋모르는 어린 시절 꿈꿨던 도극한 아름다움. 그 가장자리에라도 쪼그려 앉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생겼다. 하필 왜 지금, 이렇게 부러지고 틀어진 몸으로 그런 꿈을 꾸게 된 걸까. 이젠 절대 할 수 없다는, 닿을 수 없는 먼 것이 되어버렸다는 절박함이 몰려왔다. 할 수 없어서 더 간절해지는 이 마음은 무엇인지. ‘이 나이에?’라는 말은 쓰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뻣뻣해지는 팔다리를 보면 어쩔 수 없이 떠올랐다.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라며 포기하는 것은 초보자가 된다는 자아의 위축에서 오는 감정적인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난데없이 발레가 생각날 때면 ‘이 나이에’라는 짧은 말로 시작과 시도의 불씨를 꺼뜨리곤 했다. 하지만 이러다 말겠지 했던 생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픈 부위가 추가되고 예상보다 오랫동안 통증에 시달리자 마음의 낙심이 커지던 때였다. 몸이 아프다는 건 마음도 덩달아 아프게 만드는 법. 평소라면 무심히 넘길 말도 일 년 가까이 누워 지내다 들으니 뾰족하게 마음에 와서 꽂혔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말은 다 건강할 때나 통하는 얘기였다. 그보다는 몸상태가 정신건강을 좌지우지했다. 체력이 국력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몸 상태가 무너지자 그보다 더 빠르게 마음의 울타리가 무너졌다. 그즈음 띄엄띄엄 이어지던 월경도 ‘이때다’ 하듯 소식을 끊었다. 가만히 누워있다 보면 근거는 있지만 쓸모는 없는 서운함이 새록새록 올라왔고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언제쯤 고통 없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싶어서 우울했다.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가뜩이나 줄줄 새어나가던 자신감은 두 번의 사고로 바닥을 보였다. 그럴 때면 내 몸 어디에서 시작되는 건지 알 수 없는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 두피까지 뜨거워졌다. 말로만 듣던 갱년기 증상이었다. 이런 종류의 일은 왜 항상 한꺼번에 찾아오는가. 신체란 어찌나 정직한지 50대에 들어서자마자 먼 이야기 같던 여러 증상이 찾아왔다. 또래에 비해 아직은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시간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통증을 참아내는 동안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끝없이 가라앉을 때면 완치 후의 모습을 상상했다. 지금의 통증과 상처도 결국은 끝이 있을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완치 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버킷 리스트 작성하듯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곱씹었다. 그러다 오래 부유하던 꿈 조각 하나를 잡았다.   

        

‘시작은 해볼 수 있잖아, 뭐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라는 배짱이 단전에서부터 샘솟았다. 무엇보다도 당시의 나는 실현 가능한 작은 목표가 필요했다. 그것을 이뤄가면서 무너지는 건강과 나이 앞에 주저앉는 나를 일으켜야 했다. 통증과 시들어가는 몸에서 벗어나 완전히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기초로 돌아가는 과정, 매일의 일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이 필요했다.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한 번의 시도로 끝날지라도, 시작했다는 흔적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라 믿었다.     

 

더 이상의 고민을 끝내고 성인발레를 검색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발레를 즐기는 분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운동 삼아 시작한 분부터 작품을 완성하는 단계까지 각자의 목표만큼이나 수업내용도 다양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책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있어서 발레와 관련된 책을 끌리는 대로 찾아 읽었다. 그러다 영국의 존 로우라는 90세 할아버지의 데뷔 이야기를 알게 됐다. 그 할아버지는 반평생 미술 교사로 살다가 일흔아홉 살에서야 가슴속에 숨겨놨던 발레의 꿈을 펼치기로 결심했고, 부단한 연습 끝에 11년 만에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음악에 맞춰 발을 세워 몸을 높이 올리는 건 황홀한 경험”이라며 발레를 예찬한 존 로우 할아버지의 인터뷰를 읽으며 ‘이 나이에’라는 말을 던져버렸다. 그에 비하면 오십은 나이 핑계를 대기엔 너무 젊었다. 책과 온라인에서 찾아낸 수많은 발레인들은 수련 단계와 몸 상태가 저마다 달랐지만 즐기는 마음과 숨길 수 없는 기쁨만큼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그 틈에 얼른 끼고 싶었다.      

     

몸상태가 나아지자마자 발레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막연히 꾸던 꿈을 나이 오십에 실현한 셈이다. 워낙 뻣뻣한 몸치인 데다 일 년간의 와병 생활이 더해져 매번 내적 곡소리를 뽑아내지만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면 마음만큼은 뼈와 근육이 말랑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어설픈 쁠리에 (plié)와 흔들리는 아라베스크(arabesque) 동작도 간신히 흉내 내는 정도지만 이런 내가 신기해서 유니버설 발레단이 부럽지 않다. 일주일에 단 한 번 누리는 50분 수업이지만 그 시간의 잔향은 일주일을 행복하게 만든다. 이따금 재발하는 남편을 향한 미움도,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투정도 고요한 음악 속에 몸을 맡기다 보면 잠잠해진다.        

   

무언가를 이루어내겠다는 의미심장함에서 벗어나 경쟁하지 않는 배움은 얼마나 풍요로운지, 세상의 수지타산에서 벗어나 더하고 뺐을 때 무언가 남지 않아도 도전해보는 용기는 또 얼마나 힘이 센지 매일 실감한다. 내 몸과 동작에만 집중하다 보면 순간을 충만하게 사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된다. 원하는 만큼 뻗어내기 위한 노력이 헛된 것 같지만 그 순간이 모여 어제보다 더 먼 곳까지 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유연성과 근력은 양날의 검 같아서 유연성이 좋은 사람은 근력이 부족하고 근력이 튼튼한 사람은 유연성이 약하다고 하는데 나는 어떻게 된 게 둘 다 모두 턱없이 부족해서 발레 하는 데는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다. 발레리나의 여리여리한 팔다리 속에 얼마나 많은 속근육이 자리 잡고 있는지 발레를 하기 전엔 몰랐다. 그들이 하는 쉬워 보이는 동작도 제대로 된 느낌을 내려면 얼마나 많은 근육이 힘을 합쳐 떠받쳐야 하는지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발레를 그저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나 음악에 맞춰 쭉쭉 늘리기만 하면 되는 것쯤으로 여길 수도 없다. 중력을 거스르는 수련 과정을 따르다 보면 나의 태도와 몸짓에 우아함 한 스푼 정도가 추가되는 걸 확인하게 된다. 내 몸을 마음대로 구부리고 늘리고 조절하는 쾌감은 ‘몸감’을 길러주어 일상의 자세에도 변화를 준다. 몸의 바른 축을 찾으면 발끝으로 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발레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도 흔들리지 않는 내 안의 축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몇 달째 발레를 배우고 있지만 아직도 무슨 운동하세요?라는 질문에 그냥 스트레칭 배운다고 얼버무린다. 발레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발레리나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못하는 처지라서 무슨 도둑 발레 하듯 몰래 다녀온다. 여전히 기본자세조차 완벽하게 나오지 않고 몸의 축은 자주 흔들리는 데다 슈트뉘(soutenu)나 피루엣(pirouette) 같은 턴은 시도도 못하는 단계지만 내 몸이 조금씩 변해가는 건 생각지 못한 큰 기쁨을 준다. 처음과 달리 손끝이 발 끝에 점점 다가가고 내가 원하는 부위에 힘을 주고 빼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다. 알 라 스콩(à la seconde) 자세로 서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발등을 뻗어낼 때의 시원함도 어렴풋이 알아챘다.      


포인트 슈즈를 신고 발끝으로 서는 날을 맞이할지 알 수 없지만 시작했다는 흔적은 해 본 사람 쪽에 서는 성취감을 선사한다.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나의 몫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의 순간을 견뎌낸 나 자신을 믿고 조금 더 먼 지점을 향해 목과 손끝과 발끝을 뻗어본다. 그렇게 무아지경에 빠져 발레 수업에 집중하다가도 정신 차리고 거울을 보면 그랑 플리에(grand plié) 후에 주저앉아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토실한 내가 보인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이것 또한 나인 것을. 와병 생활이 가져다준 커다란 선물을 오래도록 품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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