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희 Dec 19. 2022

일의 정의 다시 세우기

하라는 사람 없어도 매일 ‘일’합니다


지인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깔끔치 못한 며느리의 살림에 불만을 품은 시어머니의 사연이었다. 며느리의 만행(?)을 꾹꾹 보아 넘기던 시어머니는 어느 날 고삐가 풀려서는 본인은 조언이라 생각하고 며느리는 잔소리라고 생각할만한 지적을 했다고 한다. 잠잠히 듣고 있던 며느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머니, 저 일하는 사람이에요.”

이 얼마나 깔끔한 대답인가. ‘일’ 때문이라고 하는 순간 더 보탤 말은 있어도 없는 게 된다. 상대의 입을 바로 다물게 만드는 전설 같은 이 문장을 나는 늘 동경해왔다. 나도 ‘일’의 그늘 아래에 숨어들고 싶었다. 그래서 20대에는 30대를, 30대에는 40대의 ‘일’을 준비하며 살아왔다.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나이였다. 제법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고 계획이 의미 있는 시절이었다. 40대에는 50대를 걱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력이 무르익었고 일과 일상이 적절히 어우러져 몸에 익었으니 하던 일을 계속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달 전 어이없는 이유로 몇 가지 일이 줄었고 나머지 수업도 학기가 마무리되면서 자연스레 종료를 앞두게 되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언제든 일을 뺏길 수 있는 신세였다. 우스개처럼 반백수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막상 완벽한 '무직' 상태가 된다고 생각하니 이 상황이 낯설었다. 마지막 백수 시절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물일곱, 결혼 전 10개월이 전부였다. 그때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평소 배우고 싶지만 미뤘던 것들을 번갈아가며 배웠다. 요리와 꽃꽂이처럼 따로 배우기엔 비효율적이고 알아둔들 크게 쓸모 있을까 싶은 것들로 채워진 효율성 제로의 시간이었다. 24시간이 내 것이고 나만 돌보면 됐던, 비현실적일 정도로 꿈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때도 나는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다시는 사회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될까 봐, 경제적 자립에서 영영 떠나게 될까 봐 자주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래서 일단은 ‘열심히’ 살았다.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도모했고 다른 길은 기웃거릴 틈을 주지 않고 직진했다.     


폭풍 같은 이십여 년이 훌쩍 흘러 나이를 이만큼이나 먹었지만 또다시 다가온 실직 앞에서 내가 느끼는 상실과 초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급격한 노안과 이전 같지 않은 체력은 물론이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돌부리처럼 튀어나오는데도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열망은 오히려 더 진해졌다. 덜어내고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한 나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욕심만 보태져서 나의 50대가 막막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격차가 눈에 띌수록 애꿎은 후회가 쌓였다. 그때 이걸 준비할 걸, 이랬다면 저랬을까?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마음이 고단했다.    

  

그 틈은 나에게 잠잠이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나 바라던 자신에 대한 증명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누구의 요구였는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나의 증명을 요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은 나에게만 의미 있었다. 다들 자기 앞가림하느라 바쁜 세상에 이 무슨 주인공병이란 말인가. 그 각성 때문인지 때마침 일과 관련된 새로운 제안이 이어졌지만 선뜻 달려들게 되지 않았다. 일하고 싶다며 발을 동동 구를 땐 언제고 막상 기회가 오니 머뭇거리며 이유를 둘러대는 건 또 뭐람.

      

두 마음 사이를 갈팡질팡 오가며 며칠을 고민한 끝에 나는 읽고 쓰는 삶을 선택했다. 이제껏 살아온 대로 나의 10년 후를 준비하는 쪽에 선 것이다. 모든 제안을 물리치고 나선 길이니 늘어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하는 시간만큼을 쓰는 시간으로 확보하려고 매일 집을 나섰다. 나 자신을 콩 볶듯 볶아가며 글 쓰는 자리에 밀어 넣었다. 짧은 시간에 성과를 거둘 수 없는 막연한 일이었으니 10년을 바라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나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불편한 기분에 시달렸다. 매일을 충만하게 보내려는 욕심과 무위도식하는 것 같은 찜찜함이 부딪치며 어느 것 하나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나를 제외한 누구도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라 내 시간을 마음대로 침범해도 된다는 낌새가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 자격지심이 독기를 품고 몰려왔다.      


‘유미의 세포들 시즌 2’에서 주인공 유미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 쓰기에 도전한다. 매일 주어지는 자신만의 온전한 시간 동안 행복 별 5개를 모두 채우지만 오랜만에 동창을 만나 퇴직을 털어놓는 순간 별 3개가 한꺼번에 사라진다.

“그래서 너 뭐하는데.”

“소설을 좀 써보려고.”

“그럼 너 무직이야?”

“아니 글 쓴다고”

“그니까 현재 무직이라는 거잖아.”

그렇다. 글 쓰는 건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이다. 당장의 수입이 없으면 누구에게도 ‘일’하는 사람일 수 없는 거다. 당장의 수입. 무시할 수 없는 큰 문제다. 하지만 참 다행스러운 것은 글쓰기를 한 뒤로 돈 쓸 일이 오히려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거라곤 작업을 위해 카페에 가서 쓰는 커피값과 최소한의 운동비가 전부다. 글 쓰면서 사람들과 만남이 뜸해졌고 마스크가 일상이 되면서 변변한 옷과 화장품을 사본 기억은 아득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과 직장 핑계로 각종 역할에서 좀 빠져보고 싶은 욕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가족 모임에 늦더라도 퇴근하고 부지런히 온 며느리로 환영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막상 지금의 삶과 직장생활을 저울 위에 올려놓으면 화들짝 놀라게 된다. 출근을 하기도 전에 ‘퇴근’하고 싶어지는 이 마음 때문이다. 24시간을 내 주머니에 넣고 원하는 일에 마음껏 몰두하는 일상을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다수가 생각하는 ‘일’과는 머나먼, 글쓰기에 매진하는 일상이지만 나에겐 이것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다. 나는 돈 벌 수 있는 기회 대신 불투명한 미래에 뛰어든 사람이다. 20대의 유미가 30대의 자신에게 용기가 대단하다고 말했듯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계속 응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도, 손에 잡히는 문장 없이 부유하는 것 같은 일상이라도 이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것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는 내가 제일 잘 안다.      


이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이따금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을 건드리는 일은 생긴다. 아래층 천장에서 물이 샌다는 경비실 호출을 받은 아침이었다. 확인해보니 우리 집과 아래층 사이의 배관이 문제였다. 우리 집과 아래층 욕실을 동시에 봐야 해서 공사일정을 맞춰야 했다. 난데없이 큰 지출이 들어가게 된 데다 공사를 포함한 번거로움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일정을 잡으면서 아래층 아주머니가 한 말이 자꾸 거슬렸다.

“제가 집에서 노는 사람이 아니라서...”

직장 때문에 하루를 빼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아파트 구조의 문제라는 건 알지만 그분도 꽤나 번거로웠을 거다. 그러니 우리가, 엄밀히 말하면 언제든 일정 조정이 가능한, 딱히 일정이라고 할만한 게 없는, ‘내가’ 맞춰드리는 게 당연했다.


그날의 대화는 ‘일’과 ‘글’ 사이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의 이유를 알게 했다.

'그냥 노는 사람'

나부터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다른 누구의 말과 생각을 탓할 것도 없다. 경제적인 무능력자,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책 사 읽고 글 쓴답시고 카페 가서 커피 사 먹는 팔자 늘어진 아줌마. 내가 생각하는 나였다. 지인들에게 백수라고 푸념을 늘어놓으며 자기 비하를 일삼으면서도 그들의 반박을 기대했다. ‘일 하시잖아요. 매일 쓰는 거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아유 대단해요.’ 이런 빈 말에 잠시나마 위로받길 원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인이 필요했다. 그 확신을 나에게서 찾지 못하고 남들에게 매달렸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그런가? 돈을 못 벌면, 당장의 성과가 없다면 지금 나는 하는 일이 없는 건가? 글쓰기를 배제하고 생각해도 그렇다. 한창 일할 땐 전업주부의 노동가치가 몇 백만 원이라고 떠들어놓고 전업주부가 되자 그런 건 단숨에 잊었다. 어쩌면 속으론 부정했던 게 아닐까?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의 하루를 곱씹어본다. 끝도 없이 생기는 집안일은 두말하면 입 아프고 식구들 입에 밥 한 끼 들어가려면 쉴새가 없다. 장보고 재료 다듬고 요리와 설거지의 무한 루틴에 몸을 맡겨야 한다. 게다가 사람이 살만한 공간을 만들려면 이따금 베란다랑 거울도 좀 닦아줘야 하고 며칠만 빨래가 밀려도 팬티가 없네, 양말이 없네 하며 식구들이 허둥댄다. 집안일만큼이나 해도 해도 끝없고 표 안 나는 글쓰기는 또 어떤가? 하루도 쉬지 않아야 몇 줄이라도 겨우 모인다. 그뿐인가? 노후에 아이들한테 짐 안되려면 내 한 몸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도 무시할 수 없다. 걷기와 읽기를 매일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렇게 내가 해낸 많은 일을 확인해도 내 마음은 여전히 말끔하지 않다. 일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자신 있게 나오진 않는다. 그 개운하지 못한 마음에 대해 <활활발발>을 쓴 어딘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하야티는 잘 논다. 재미있는 건 노는 것에 대해 이전 세대가 보인 도덕적 강박이나 불안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하야티의 삶이 걱정스럽거나 불안해 보인다면 당신은 아마도 노동이 삶에 목표와 질서를 부여하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일 것이다. 하야티는 놀면서 삶을 조직하고 이상을 향해 가고 스스로를 연마하고 세상에 기여한다.' 228쪽     


그렇다. 노동이 삶에 목표와 질서를 부여하는 시대를 살았던, 근면 성실은 기본 덕목이고 물질적 보상이 일의 가치인 시대에서 온 사람. 나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꼰대가 되어 가는 중이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엔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의 기쁨과 슬픔'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이 일과 금전적 성취를 연결한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뱉었고 그렇게 산다고 착각했다.      


일본의 존경받는 기업인인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그의 저서 <왜 일하는가>에서 ‘일은 한 사람의 인격을 높이는 훌륭한 도구다’라고 정의했다. 그렇다. 금전적인 만족과 순간적인 우월감처럼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들에 집중하다 보면 ‘일’의 진짜 의미를 놓치기 쉽다. 시킨 사람 하나 없지만 매일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해 온 나의 꾸준함을 평가절하하게 되고 그것이 나의 인격과 연결된다는 것을 쉽게 잊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본질은 단순하다.     


배달의 민족 장인성 CBO는 <이게 무슨 일이야!>라는 책을 통해 인생에서 일이란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것으로 반드시 경제적 활동이 아니어도 괜찮다며 일의 영역을 확 넓혀준다. 그의 말대로 살아가는 이유를 알려주는 동력이며 동기부여의 수단으로써의 일이라면 나는 매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중 아닌가.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나의 매일은 이미 빠듯하고 촘촘하다.


반갑게 찾아온 각성은 다른 각도에서 ‘일’을 바라보게 했지만 후회가 취미이고 까먹는 건 특기인지라 그간의 강박을 쉽사리 끊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과 인정에 대한 갈구만큼은 이제 정말 끊어버리고 싶다. 일한다고 말할 때의 순간적인 우월감에 사로잡혀 내가 누릴 자유를 포기할 순 없으니 말이다. 더 이상 다음 10년을 준비하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님을, 흘러 흘러가다 보면 어느덧 내 인생이 되어 있음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나잇값 하고 살기도 쉽지 않다. 이왕에 먹은 나이, 끊을 건 좀 끊자.     

작가의 이전글 고립 아니구 고독이거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