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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 Dec 19. 2022

고립 아니구 고독이거든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내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지극히 간단한 사회적 행동마저도 – 누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외식을 한다거나- 엄청나고 무섭고 피곤한 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 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 P 48        




며칠 전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오랜 세월 묵은 우정만큼 허물없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문득문득 웃고 있는 내가 너무 어색했다. 대화 내용이나 분위기의 어색함이 아니었다.  근육의 문제였다. 웃는 표정을 힘주어 짓지 않으면 미소가 금방 무너지더니 결국 양쪽 뺨이 뻐근해지는 게 아닌가. 너무 오랜만에 크게 웃은 탓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요즘 나의 일상을 되돌아봤다. 오전에 소소한 집안일을 마치면 서둘러 카페로 나선다. 그날 해야 할 일을 적어놓고 늦어도 1시 전엔 나만의 업무를 시작한다. 저녁식사 챙기러 집에 갈 때까지 아무 표정 없이 노트북 화면만 바라본다. 하루 종일 나 혼자다. 그렇게 지낸 지 몇 달이 지났다. 괜한 자격지심이 올라온 탓일까? 얼마 전 무슨 대화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말 끝에 “너 그러다 고립되는 거야.”라는 남편의 말에 앙칼지게 대꾸했다. “고립 아니구 고독이거든!!”      


이 책은 제목부터 나를 연상시켰다. 지금은 은둔자로 살아가지만 난 참 명랑한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고독과 고립의 사이를 오가는 요즘은 내 안의 명랑을 의심하게 된다. 우물처럼 퍼쓰지 않으면 말라버리는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내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숨어 지내다 보면 명랑할 틈이 없다. 혼자서 명랑하기는 쉽지 않다.     


어제는 요즘 자주 가는 카페 사장님이 갑자기 물어보셨다.

“작가시죠?”

화장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맨얼굴에 시커먼 파카와 검은 츄리닝(트레이닝복 아님)을 문신처럼 입은 아줌마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맨날 혼자 와서는 종일 노트북을 노려보는 게 이상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대놓고 작가냐고 묻는 질문에 놀란데다 몹시 추레한 내 모습이 다른 작가님들 망신시키는 것 같아서 선뜻 답을 못하고 있는데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라는 말이 돌아왔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이 공간을 참 좋아했는데 낼부터 어디로 가야하나.. 이 생각을 하느라 어제는 좀처럼 집중이 안 됐다. 하지만 오늘 다시 이곳에 왔다. 같은 차림과 맨얼굴로. 별로 망설이지도 않은 걸 보면 은둔력이 최고조에 오른 모양이다. 고립이든 고독이든 은둔자로 지내는 것도 다 한때니까 이 시간의 은밀함을 누리려 한다. 그래도 이따금 미소는 짓는 건 잊지 말아야겠다. 웃는 근육은 소중하니까. 마스크 너머로 몰래.


#명랑한은둔자#캐럴라인냅#김명남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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