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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스포츠카, 파란 카리브해.

어릴 적 오락실

아이가 타던 차는 언제나


오늘의 빨간 차는 현실이었다며

카리브해의 바람이 크게 말해줬어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20세기말에는 오락실이 많았다. 오락실이 있기에 100원의 가치는 굉장히 높았다. 실력만 따라준다면 100원이라는 돈으로 30분이 넘게 유흥을 즐길 수 있는 가치였다. 100원이었던 떡꼬치가 200원으로 오르는 역사적인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날, 시장에서의 100원의 가치는 폭락했지만 오락실에서만큼은 여전히 100원이 소중했다. 동네의 오락실을 가면 입구 쪽에는 대부분 운전 게임이 있었다. 빨간색 차를 타고 바닷가를 질주하는 그 게임은 오락실에 따라 한 판에 200원이기도 했다. 다른 오락기에 사람이 꽉 차도 운전 게임만큼은 자리가 비워져 있었는데 비단 200원이라는 고가의 게임비뿐만 아니라 게임 시간이 대부분 5분을 넘지 못하고 금방 끝났기 때문이었다. 떡꼬치를 먹어도 5분 동안 먹는데 게임 한판에 200원이라니. 무시무시한 게임이 아닐 수 없었다.


쿠바에는 최소 30년이 된 올드카들이 즐비하다. 바라데로에 도착한 날 눈을 가장 반짝이게 한 것은 카리브해도, 모히또도 아닌 가지각색의 올드카였다. 어릴 적 오락실에서 봤던 빨간 자동차들이 그대로 도시에 심어져 있었다. 어렸을 적 쉽게 하지 못했던 운전 게임을 대신해 하바나에서 직접 올드카 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파란색, 핑크색, 노란색 등등 수십 대의 올드카 중 어렸을 적 게임과 쏙 닮은 빨간색 차가 한 대 있었다. 마침 같이 간 동행도 빨간색 차가 가장 마음에 든다 하여 바로 결정할 수 있었다.


매연을 뿜으며 바닷가로 향하는 빨간 자동차. 오픈카를 처음 타면서 깨달은 사실은 오래된 차의 검은 매연을 막을 수 없다는 단점이었다. 콜록콜록. 터널에 들어갈 때마다 잠수를 하듯이 숨을 참고 머리를 보호했다. 다행히 터널은 길지 않다. 이윽고 바다가 나오고 카리브해의 냄새가 코끝에 가까이 닿는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아래 파아란 바닷가를 끼고 초록 초록한 들판을 달리는 새빨간 자동차. 어릴 적 게임 속 장면이 현실로 다가왔다. 조금은 벅찬 감동에 현실인가 의심할 때면 바닷가의 강한 바람이 뺨을 때리며 귓속에 외쳤다. ‘이건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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