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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

대학교 졸업을 앞둔 모든 4학년 학생들은 마지막 학년이 시작되면 담당교수님과 취업 상담을 해야 한다. 나는 전자공학과였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공계 회사 취업으로 길을 향했다. 공무원 준비나 전문직 준비가 조금 흔치 않은 진로정도였다. 여느 학생들과 같이 상담시간이 잡혔다. 연구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 덤덤하게 말한다.

“교수님, 저는 유럽에 가서 호떡을 팔겠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유럽에서 호떡을 팔고 싶었다.
대학교 3학년,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기숙사에는 수많은 유학생들이 있었고 대부분 유럽이나 중국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매주 한번 정도 기숙사 주방에서는 소소한 파티가 열렸다. 이전까지 파티라 함은 멋진 턱시도를 입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어른의 문화라고 알고 있었다. 위대해진 개츠비같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고상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나오면 몇몇은 춤을 춰야 할 것 같았던 이미지였다. 당연하게도 영화에서 비롯된 편견이었다. 기숙사의 파티는 각자의 음식이나 디저트를 들고 주방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술을 먹을 때도 있고 춤을 출 때도 가끔 있었지만 드레스와 턱시도는 필요 없었다. 일본 친구들은 술에 취하면 가끔 바지를 벗기도 하는 날것의 파티였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분위기와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요리를 대접할 수 있다는 것에 파티는 늘 즐거웠다. 요리를 원래 좋아하기도 하였고 애국심이 한참 불타오르던 애국청년으로서 한국 음식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도 넘쳤다. 파티 날이 다가오면 내가 먹을 때보다 더욱 정성껏 요리를 연구하고 만들었다.


1년여간 유럽 친구들에게 한국음식을 만들어주면서 개인적인 통계가 생겼다. 한국음식은 대부분 맵거나 마늘이 들어가 사람에 따라 광적으로 사랑하기도, 또는 질색한다는 점이었다. 김치나 고추장이 들어간 음식은 매운 맛과 향 때문에 극단적인 기호를 보여주었다. 간장을 베이스로 한 불고기는 약간의 마늘향으로 인해 싫어하는 이들이 있었고 김밥은 식감이 이질적이라는 평이 있었다. 외국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며 한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좋아한 음식은 단 하나, 호떡이었다. 쫀득한 식감에 달콤한 설탕꿀이 모두의 입맛에 맞았고 계피와 약간의 견과류가 들어가며 의도와 다르게 건강식 같다는 의견도 많았다. 채식주의자가 많은 유럽 친구들에게도 문제가 없었다.


1년간의 일본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겨울방학 동안 유럽여행을 떠났다. 독일을 시작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등을 여행하며 느낀 것은 외식물가와 길거리 음식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아직 학생인 점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푸드트럭에서 파는 소시지와 감자튀김이 보통 4유로(5,000원) 였다. 양이 많다고 볼 수도 없었다. 배고픔에 4유로를 지불하고 한입 베어물은 카레맛 소시지는 마침 그다지 맛도 없었다. 처음으로 마음 속에 호떡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소시지도 4유로나 받는데 호떡을 개당 2유로에만 팔아도 경쟁력이 충분하고 이익 또한 상당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겨울의 소울푸드인 호떡을 세계에 알릴 수도 있는 의미있는 꿈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마지막 4학년을 보냈다. 마음 한켠에는 호떡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지금 당장 호떡을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우선은 다른 학생들과 같이 취업준비를 했다. 대학 에 들어와서도 회사보다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해 회사에 들어가는 길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전공을 고르지 못해 무엇을 되고싶은 지도 모르고 공부하던 고등학생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호떡을 팔고 싶다는 마음은 더 커져갔고 학기 말이 되어 담당교수님과의 취업 상담에서 호떡을 팔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당황스러운 표정과 웃음을 번갈아 지으시던 교수님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곧 알아채고 내 계획의 문제를 진지하게 지적한다. 회사 경험의 필요성, 자본, 불안정성 등등.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직접 말로 들으니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개방적이었고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셨던 부모님도 이번에는 회사를 먼저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권한다. 마음이 약해진다.


회사는 가지 말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며 다짐했던 청춘이지만 호떡을 파는 것이 아주 간절하지는 않았나 보다. 결국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매년이 최악이고 최고의 경쟁률인 취업시장이었다. 그럼에도 교환학생을 지내며 배운 일본어와 영어 덕분에 운좋게도 마음에 드는 외국계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호떡은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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