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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대화.

타이베이, 대만

뒤설레는 마음으로 달려오다

되돌아본 어스름한 골목길

어느새 허기지다


북적이는 군중 속 만두 한 입에

혼자인 것을 깨닫는다


좋아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도

딤섬과 우육면도 청취와 맛은 홀로 느낄 뿐이다


나는 나와 첫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고독해야만 했다. 인생의 풀리지 않는 질문을 찾아 퇴사를 한 답이 없는 상황이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도 알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다. 지금의 선택을 평생 후회할 수도 있다.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설렌다. 역사의 성인들도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났던 여정의 첫날은 설렜을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의 첫걸음은 대만으로 결정했다.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가장 저렴한 비행기 가격으로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나라였다. 당장 퇴사한 자의 주머니가 가벼운 것은 아니었지만 검소하고 겸손하게 출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촐한 배낭을 메고 집 대문을 나선다. 쌀쌀한 새벽 공기가 몸을 감싸지만 상쾌하다. 정류장 앞 김밥집에서 김밥을 주문한다. 평범한 삶에서 가장 흔한 음식이었던 참치김밥도 당분간은 보기 어려운 음식이 될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평소에는 먹지 않던 중국산 김치도 한 입 해본다.


식사를 마치고 탄 버스에 캐리어가 가득하다. 대부분 짝이 있거나 가족이다. 자리에 앉아 지난밤 뒤척였던 잠을 마저 자니 공항에 금방 도착했다. 버스에 내려 체크인을 하고 입국장으로 향하는 마음이 복합적이다. 설렜던 마음은 무덤덤하고 차분해진다.


놓고 온 짐은 없을까. 서류나 면허는 잘 챙겼을까. 긴장과 생각의 연속으로 좀처럼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 마침내 이륙한 비행기가 금세 대만에 도착하니 모든 걱정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기분이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호스텔로 향했다. 꽤나 더운 날씨에 땀이 범벅이다. 호스텔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거울을 보는데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 아마 퇴사 및 급작스러운 생활 패턴의 변화로 인해 약간의 정신착란이 온 것이라 추정된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고는 밖으로 나간다.


아무 계획도 없이 사람이 많은 쪽으로 걷다 보니 시장이 나오고 만두집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이 훌쩍 지났는데 먹은 것이 없었다. 여행의 기대와 설렘을 바닥까지 긁어먹다 보니 배고픈 것도 잊어버렸던 것이다. 가판대 앞에 서서 손가락을 치켜들며 자신 있게 말했다.


"이!"


'이, 얼, 싼, 쓰' 고등학교에서 배운 중국어였다. 공부한 보람이 있는지 주인장이 바로 알아듣고 웃으며 만두를 건네준다. 쓸모없는 배움은 없다는 어느 구절이 스쳐 지나가며 뿌듯했으나 웃은 이유를 생각해 보니 외국인이 우리나라 분식집에 들어와 느닷없이 ‘일!’이라고 외치며 검지 손가락을 든 것과 같았다. 난데없이 눈치게임을 시작한 못난 외국인이었음에도 만두집 주인은 바로 알아차리고 만두를 건네준 것이었다. 찰나의 뿌듯함과 영겁의 창피함을 얹은 만두 맛은 잊지 못할 만큼 좋다.


허기를 달래고 나니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나만의 정적이 흘렀다. 혼자였다. 출국 전 설렌 마음이 사라지고 빈자리는 걱정으로 채워졌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배경지인 기찻길에서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배경을 닮았다고 하는 지우펀에서도 설레고 벅찬 마음속에 걱정이라는 바람이 스르륵 지나간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도 모르는 막연한 마음이었다. 멋진 배경을 보며 감탄 한번, 뒤돌아서 걱정 한번.


“잘할 수 있겠지?”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 나는 나와 첫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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