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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끔은 원숭이였다.

태양을 머금은 우거진 숲 속

계곡물이 오아시스다


땀에 담가져 지친 마음

우연히 만난 원숭이에게 달래 본다


반가워 건넨 인사에

느닷없이 화를 내는 원숭이


내가 뭘 잘못했어? 왜 그래?


상대방 말은 듣지도 않고

화부터 내는 모습


나도 가끔은 원숭이였다



페낭은 인도에 함정이 많아 걸어 다닐 때 조심해야 한다. 구멍이 뚫린 바닥도 많고 가끔은 뚜껑이 없는 하수도도 있다. 발뿐만 아닌 몸 전체가 빠질 수 있는 크기이다. 긴장하면서 걷다 보니 여행가가 아닌 모험가가 된 기분이다. 다만 수많은 함정 속에서 보물은 없어 보인다. 바다가 있고 멋진 벽화가 있는 거리도 있는 도시이지만 모험가이기에 페낭국립공원을 탐험해 보기로 한다.


국립공원의 입구는 잘 포장된 아스팔트 길이 포장되어 있고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며 시원한 숨을 쉬게 해 주었다. 포장된 길은 길지 않았고 흙길이 시작된 우림의 첫 발걸음은 고요했다. 우거지다. 습하고 덥다. 하지만 앞으로 가다 보면 그림 같은 경치가 기다릴 것이다라고 생각한 나는 어리석었다. 국립공원을 탐험하는 동안 단 한 명의 사람도 발견할 수 없었고 식수가 다 떨어져 계곡물을 마시며 나아갔다. 당장 맹수나 아나콘다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우거진 숲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더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뱀이나 벌레떼를 마주하지 않는 것으로 감사했다. 우거진 숲을 헤쳐나가면 마주할 굉장한 경치를 기대할 뿐이었다.


오랜 시간 걸은 끝에 발견한 안내판


한참 걷다 보니 고대하던 안내판이 보이고 바다가 나온다. 아름답다. 아주 절경은 아니었지만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온몸에 젖은 땀이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아름다운 경치를 봤으니 이제 충분하다고 자신과 협상했다. 빠르게 끝난 협상 후 곧장 몸을 돌려 입구로 되돌아간다. 여행 중에 한번 지나온 길로는 되돌아가지 않으려는 원칙이 있으나 지금 상황에서 원칙쯤은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도 종종 길을 잃는 길치였지만 여기서 길을 잃으면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단번에 나올 수 있었다. 끝이 있다는 희망 덕분인지 되돌아가는 길은 긴장 속에서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출구에 가까워지자 들어올 때는 보이지 않았던 원숭이 무리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열대우림으로부터 벗어나 문명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유인원을 만났다는 동질감에 원숭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


되지도 않는 눈웃음을 섞어 손을 흔들었다. 기대와 달리 원숭이들이 갑자기 우끼끼 화를 내며 다가온다. 당황스러웠다. 여전히 나는 혼자였다.

공격할 기세로 다가오는 원숭이를 향해 몸을 크게 부풀려본다. 하지만 수적 우위를 점한 이들은 더욱 기세 좋게 다가온다. 잠시 뛰어 도망쳐보았지만 달리기도 빠르다. 어떡하지. 마침 길가에 돌멩이가 보인다. 뒷걸음질 치며 돌멩이를 던졌다. 거리가 어느 정도 더 벌어지자 원숭이들이 되돌아간다.


긴박한 전투였다. 손짓이 문제였을까. 안녕이라는 목소리가 위협적이었을까. 아무 적의도 없는 인사였으나 그들에겐 아니었나 보다.


그럴 때가 있었다. 미리 답을 정해놓고 생각의 벽을 쌓은 적이 있었다. 상대의 말은 모두 거짓으로 들렸다.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실컷 화를 내고 몰아세운 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과거의 아둔함을 오해라는 단어로 포장했다. 후회와 반성은 충분히 늦은 시점에 찾아온다. 시간이 지나 서서히 잊힌 기억은 아주 가끔 스쳐 지나가는 씁쓸함으로 남아 한 번씩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다.


한두 번 있었던 실수도 아니지만 당장 내일 같은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고 지난날의 실수를 다시 반성하겠지.


나도 가끔은 원숭이였다.


일단 아름답다고 생각하자
전투 시작 전 평화로운 시대의 원숭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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