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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의 거리에는.

시칠리아, 이태리


대부의 거리에는 총이 없다

친근한 이들과 술이 있지


대부의 거리에는 배신도 없다

상인의 거래는 정직하지


대부의 거리에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무지개가 있었지


운 좋은 여행자는

대부를 곱씹으며 화산을 바라본다



'대부'

명작을 꼽을 때마다 언급되는 세기의 영화이다. 모두가 명작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물어보면 제대로 본 사람은 별로 없다. 나이대가 맞지 않아서인지 문화생활이 대부까지 닿지 않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물론 나도 본 적이 없었다.


시칠리아 여행을 결정하고 나서야 대부의 배경이 시칠리아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비행기에서 대부를 감상했다. 아카데미의 상을 휩쓸었다는 연출과 스토리를 말할 것도 없고 알파치노의 열연을 보니 왜 명작이라 불리는지 수긍이 갔다. 영화는 마음 깊은 곳까지 인상이 깊었는지 시칠리아 공항에 발을 내딛자 웅장한 대부의 OST가 귀를 울린다. 영화에 잠식된 선입견은 엄한 사람을 마피아로 만든다. 말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의 안주머니에는 총이 숨겨져 있을 것 같고 수염이 덥수룩한 저 남자의 가방에는 마약이 있을 것 같다. 평소보다 더 많이 두리번거리며 도시로 가는 버스표를 끊기 위해 판매소로 향했다. 판매원은 꽤나 쌀쌀맞다. 대부의 상인은 차갑다.


어렵게 버스에 탔는데 퀴퀴한 냄새가 난다. 대부의 냄새인가. 모든 감각을 지독한 냄새에 빼앗긴 채로 창 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멀리 보이는 산이 에트나 화산인 듯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발하고 위험한 화산이다. 대부의 화산에 조금 겁을 먹은 것도 잠시, 무지개가 올라온다. 선명하고 예쁜 띠였다. 무지개를 보자 몸을 감싸던 대부의 무거운 기운이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대부의 도시에도 무지개가 뜨는구나.


도시는 영화의 무거운 분위기와 정 반대였다. 깔끔하고 숙소 직원은 친절했다. 숙소 앞 시장에는 사람이 굉장히 많고 가지각색의 식재료들이 즐비했다. 활기찬 시장을 거닐며 시칠리아의 명물인 아란치니를 한입 무니 대부의 음악이 꺼지고 안드레아 보첼리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온다. 지중해의 맛은 황홀하구나. 시칠리아의 음식들은 대체적으로 굉장히 맛있고 저렴했다. 옛날에 가난한 도시였던 이유로 내장이나 부속고기를 활용한 요리가 많았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내장요리를 찾기 쉽지 않았기에 오랜만에 맡는 부속고기의 향은 정겨웠다. 시장 구석에서 발견한 와인매장에서 레드와인 한 병을 추천받아 숙소로 가져왔다. 각각 1유로에 매입한 포도와 치즈, 올리브를 거하게 깔아놓고 와인을 땄다. 치즈 조각 한 입을 함께하니 포도향이 더 진해졌고 올리브를 먹고 마시면 소주처럼 개운해지는 맛이었다. 인상 찌푸릴 필요 없이 음식의 풍미도 높여주면서 취기도 올려주었다.


약간의 취기를 가지고 다시 시장으로 나왔다. 대부의 밤은 화려하면서도 정겨웠다. 활기찼던 시장이 밤이 되니 맥주를 마시러 나온 사람들로 다시 북적이고 음악들로 더욱 시끄러워졌다. 시장에서 아시아인은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형과 나밖에 없었지만 오랜 친구인 듯 무리로 끼어주고 함께 술을 마셨다. 주황색 옷을 입었는데 같은 색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술을 사주기도 하였다. 대부의 사람들은 정이 많다. 신나는 파티가 끝나고 늦은 밤의 골목길을 걸을 때는 다른 도시보다 더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의 거리는 깔끔하다


대부의 시장은 맛있고 활기차다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시칠리아의 밤이 지나고 강한 햇살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여행 중에는 흔치 않은 숙취이다. 와인과 위스키를 마시다 보니 주량을 계산하지 못한 것이었다. 숙취를 해소할 거리가 없어 파스타 집을 찾았다. 콩나물 해장국을 찾지 않고 파스타를 먹으러 온 모습이 강인한 시칠리아인이 된 것 같아 흡족하다. 파스타를 먹고 해장이 되자 한번 더 뿌듯해졌다. 나의 뿌리는 먼 옛날 로마로부터 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술은 아직 덜 깬 것 같다. 맛있게 먹고 계산을 하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꽤 비싸다. 부가세가 높은가 싶어 구글지도에 있는 메뉴의 가격을 확인해 봤다. 눈에 들어오는 리뷰가 하나 있었으니 가격을 올려 받는 사기가 빈번한 가게라는 리뷰였다. 계산을 받던 할아버지는 실수였다고 가격을 정정해 주었다. 밖에 나와 리뷰를 찬찬히 읽어보니 관광객을 대상으로만 벌이는 상습적인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의 상인들은 정직하지만 파스타집에서만큼은 방심이 금물이다. “절대로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지. 시칠리아에서 올리브와 와인을 마시고 파스타로 해장을 하시게”


늦은 밤 대부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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