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작별 인사》를 읽고
요즘 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강의를 듣고, 기사를 읽으며, 글을 쓰고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난 6월에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 인사》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인간과 비인간(휴머노이드, 클론 등)을 구분하는 경계는 어디에 있으며, 왜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인간 형태의 로봇을 만들려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가?
소설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대적 무(無)와 진공의 상태에서 보내지만 아주 잠시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의식이 살아있는 지금, 각성하여 살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 각성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 인식은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개개의 의식이 찰나의 삶 동안 그렇게 정진할 때, 그것의 총합인 우주정신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거다. 그걸 믿어야 한다.”
인간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잠재력을 지니고 태어나며, 인생이란 그 잠재력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는 고통이 있으며, 마지막에는 작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러한 고통과 유한성이 우리로 하여금 잠재력을 발현하게 만들며, 그래서 인간의 삶은 경험이고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이 만든 휴머노이드(로봇)는 인간의 필요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 이들은 특정한 기능이나 역할을 수행하도록 설계되며, 그 존재 이유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전투용 휴머노이드, 복잡한 기술 작업을 담당하는 전문 엔지니어 휴머노이드, 인간의 정서적 교감을 돕는 반려 휴머노이드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로봇들은 인간의 특정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인간과 달리 자신의 잠재력을 탐구하거나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며, 프로그래밍된 목적을 수행하는 데 집중한다, 목적이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인간 세계가 끝나게 된 것은 SF 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학살하거나 외계 생명체가 숙주로 삼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없이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뇌에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였고,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 상태, 가상세계에서 살아갔다. 오래전 중국의 도가에서 꿈꾸었던 삶이 인간에게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신선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멸종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미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인간은 스스로의 잠재력을 실현하며 고통과 유한성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면 인간 고유의 경험과 이야기는 사라지고,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그 편의에만 안주하다 보면 인간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의 발전을 지혜롭게 수용하고, 인간으로서의 본질과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인식하고, 기술을 도구로 활용하며, 삶의 경험과 스토리를 계속해서 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간의 삶은 목적이 아니라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우리는 고통과 기쁨을 경험하며 성장하고,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부를 대체할 수는 있어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경험과 이야기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공지능과 공존하며, 인간다운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