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의 시작은 ‘나’로부터 (조셉 캠벨의 시선에서)
조셉 캠벨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인간의 삶을 하나의 신화적 여정으로 보았다. 그 여정은 언제나 ‘일상의 세계’를 떠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모험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모든 모험의 시작에는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퇴계 이황이 태극도 안에 담은 사유도 결국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우주의 일부가 아니라, 그 질서와 흐름을 내면에 품고 있는 존재다. 자신을 아는 일은 곧, 이 위대한 여정의 출발점이다.
캠벨에 따르면, 진정한 영웅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안의 그림자, 두려움, 고통과 마주하는 사람이다. 자기 인식이란 바로 그 첫 번째 문을 통과하는 일이다. 퇴계가 강조한 ‘거경궁리’는 내면 깊이 침잠하여 나 자신을 응시하는 태도이며, 영웅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과 맞닿아 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가면을 요구한다. 우리는 직장인, 부모, 자식, 친구, 소비자 등 수많은 얼굴을 쓰고 살아간다. 캠벨은 말한다. "진짜 모험은 그 모든 가면을 벗고, 자기 자신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퇴계도 마찬가지로, 진정한 앎은 외부의 정보나 명성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이는 조용한 수련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자기를 안다는 것은 완성된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되어 가는 자기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 캠벨의 영웅이 그러했듯, 우리는 매일 일상 속에서 도전과 시련, 선택의 기로를 마주하고 있다. 그 순간마다 나의 감정, 판단, 행동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영웅적 실천이다.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작고 평범한 순간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시간을 가져보자. 혼자 있는 시간에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은 무엇인가? 내가 반복해서 피하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웅의 여정은 거창한 출발이 아니라, ‘나’를 향한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다. 진짜 앎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