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의 ‘경’과 감정의 균형 잡기

by 이재현

감정은 억제할 대상이 아니라 인식할 대상이며, 나아가 조율과 균형의 대상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퇴계 이황이 평생 실천하고 강조한 마음공부의 핵심 개념, ‘경’(敬)이다. ‘경’은 단순한 집중이나 경건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한결같이 지켜보며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잡게 하는 태도’이다. 퇴계에게 있어 경은 감정의 격랑 속에서도 중심을 지키는 닻과 같았다.


퇴계는 “경은 마음의 주재력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이는 감정을 없애려 하거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억압적 태도와는 다르다. 오히려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바라보고, 그 흐름을 분별하며,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중심을 잡는 힘이다. 경은 감정을 배제하지 않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현대적 언어로 말하자면 ‘감정의 자각 상태에서의 자기 조절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상황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경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그 분노를 억누르지도, 곧바로 표출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감정을 의식하고, 그 근원을 살피며,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조화로운 반응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묻는다. 이는 감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경청하는 태도이며, 동시에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이다.


퇴계는 감정은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악하지 않다고 보았다. 다만, 그것이 일어나는 ‘시기’와 ‘강도’와 ‘방향’이 지나치면, 즉 중용의 균형을 벗어나면 문제가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감정의 균형은 감정을 없애는 데서가 아니라, 그 흐름을 적절히 다루는 데서 생긴다. 그 중심이 되는 태도가 바로 경이다.


오늘날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수많은 감정 자극을 받으며 산다. 불안과 분노, 피로와 흥분이 뒤섞인 일상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퇴계의 가르침처럼, 경의 자세로 하루를 살아가는 훈련은 분명 가능하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의 마음 상태를 돌아보고, 감정이 동요할 때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자문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 그날의 감정 흐름을 되돌아보는 것. 이처럼 작은 실천들이 쌓일 때,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중심을 갖게 된다.


감정은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인간적인 신호이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다스리되 억압하지 않는 태도—바로 경의 실천을 통해 우리는 감정과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운다. 리더십이란 결국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감정의 균형을 잡는 일은 곧 리더로서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며, 경은 그 중심을 지켜주는 고요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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