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의 현대적 의미
퇴계 이황이 강조한 ‘지행합일(知行合一)’, ‘앎과 행함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철학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고, 누구나 그 안에서 자기 삶의 방향을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지혜이며, 개인과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리더십의 본질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면 수천 년의 지식과 조언을 단 몇 초 만에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잘 사는 법’, ‘건강한 관계를 맺는 법’, ‘성장하는 삶’에 대한 수많은 책과 강연을 접하지만, 정작 그 지식이 나의 삶과 관계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때, 무력감과 자책감을 느끼곤 한다.
퇴계는 일찍이 이 간극을 꿰뚫고 있었다. 앎은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며, 실천이 없으면 앎조차 허망해진다고 보았다. 그는 제자들에게 큰 말보다 작은 실천을, 지식보다 인격의 수양을 강조했다. 그가 말한 지행합일은 도덕 교과서의 구절이 아니라, 매일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빛나는 실천 철학이었다.
지행합일은 삶의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려는 태도, 가족에게 한 말을 책임지려는 자세, 내 마음속에서 옳다고 느낀 바를 두려움 없이 표현하는 용기, 이 모든 것이 지행합일의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그 말을 삶으로 어떻게 보여주는 가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안심이 돼”보다 “네가 그렇게 행동했기에 신뢰가 돼”라는 말이 더 큰 힘을 가진다.
이처럼 ‘일상의 리더십’이란 직책이나 명성이 아닌, 신뢰를 쌓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신에게 했던 다짐을 지키는 것, 타인에게 한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지향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자기를 이끄는 리더십이며,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빛나는 인격의 힘이다.
오늘날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겪는 갈등의 이면에는 종종 말과 행동의 불일치가 있다. “그 사람은 말만 잘하지 행동은 달라”, “나에게는 그렇게 말했으면서 왜 뒤에서는 다른 소리를 해?” 이런 말들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 반면, 말보다 삶이 앞서는 사람은 조용히 주변의 신뢰를 모으고,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요즘처럼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조언을 해주는 시대일수록, ‘신뢰’는 말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AI는 답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고, 의미를 구현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말과 삶이 하나 된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주도권을 쥐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존중과 신뢰를 끌어낼 수 있다.
지행합일은 삶의 무게를 말보다 행동 쪽으로 기울이게 하는 힘이다. 내가 오늘 다짐한 바를 내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 말보다는 태도와 일관성으로 신뢰를 쌓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조용한 리더가 된다.
진정한 리더십은 대단한 능력이나 말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한 말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로 판단된다. 지행합일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고, 타인에게 책임지는 태도이며, 그것이 바로 가장 깊고 오래 남는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