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과 본질사이에서 균형 잡기

규범과 본질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 태도

by 이재현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리더는 어려운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한쪽은 이미 정해진 규범을 충실히 따르는 길이고, 다른 한쪽은 규범을 넘어 그 속에 담긴 본질을 바라보는 길이다. 규범은 질서를 지키고 혼란을 막는 데 유용하지만, 때로는 본질과 어긋날 수 있다. 반대로 본질만을 강조하면 원칙 없는 이상주의로 흐를 위험도 있다. 따라서 리더는 규범과 본질 사이의 긴장을 성찰하며, 상황에 따라 균형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먼저 규범의 중요성을 살펴보자. 규범은 사회가 오랜 경험을 통해 마련한 공통의 기준이다. 법과 제도, 조직의 규칙은 모두 구성원들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고 안정적 질서를 유지하게 한다. 리더가 규범을 무시한다면 조직은 쉽게 혼란에 빠지고, 공동체의 신뢰는 무너진다. 예컨대 기업의 윤리 규정을 리더 스스로 어긴다면, 그 순간 구성원들의 도덕적 기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규범 준수는 리더십의 기본이다.


그러나 규범만을 절대시 하는 태도도 문제다. 규범은 언제나 시대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본래의 목적과 괴리될 수 있다. 규범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선을 훼손한다면, 그 규범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퇴계가 강조한 인(仁)은 바로 이런 본질적 기준을 상기시킨다. 인은 형식적 규범을 넘어,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회복시키는 사랑의 원리다. 리더는 규범의 틀 속에 갇히기보다, 규범이 지향했던 본래의 가치를 성찰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의료 현장에서 환자의 치료를 위한 규정이 존재한다고 하자. 규정을 철저히 따른다면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이때 의사가 규범의 목적, 즉 생명을 살린다는 본질적 가치를 기억한다면, 규정을 유연하게 해석하여 환자를 돕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이는 규범을 어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범의 근본정신을 살린 것이다.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규범과 본질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 태도다. 규범은 본질을 구체화하는 틀이며, 본질은 규범을 살리는 영혼이다.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규범 없는 본질은 현실성이 없고, 본질 없는 규범은 형식에 그친다. 따라서 리더는 규범을 존중하되 그것이 사람을 억압하거나 공동체의 선을 해치지 않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동시에 본질을 추구하되, 그것을 규범 속에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오늘날 AI와 같은 첨단 기술이 사회 규범을 새롭게 흔드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데이터 활용, 개인정보 보호, 알고리즘 공정성 같은 문제는 기존 규범만으로는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다. 리더는 새로운 규범을 세우는 과정에서도 인간 존엄이라는 본질적 기준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기술 발전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쓰이는가 하는 물음이다.


리더는 규범과 본질을 대립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성찰적 존재여야 한다. 규범을 존중하되 본질을 잊지 않고, 본질을 추구하되 규범 속에서 구현하는 균형 잡힌 태도야말로 도덕적 판단의 힘이다. 리더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규범을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규범의 본래 정신을 실현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성실히 답할 수 있을 때, 리더는 비로소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공동체는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3가지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