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리더십의 본질 — 함께 성장하는 조직
학문의 완성은 개인의 깨달음이 아니라, 공동체의 도덕적 조화로 귀결된다. 인간은 홀로 도를 이룰 수 없고, 서로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성숙에 이른다. “서로 경(敬)으로 대하고, 덕으로 감화하며, 함께 도를 논하라.”는 백록동규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 리더십(community leadership)의 본질을 가장 순수한 언어로 담고 있다.
퇴계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말하였다. “배움은 스스로를 닦는 데서 시작하지만, 완성은 남을 이롭게 하는 데 있다.” 이는 곧 함께 성장하는 리더십의 원형이다. 리더가 혼자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각자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 — 그것이 진정한 ‘도(道)’의 리더십이다.
스티븐 코비의 제6습관 ‘시너지를 내라(Synergize)’는 바로 이 원리를 현대 조직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는 “시너지는 단순히 협력의 결과가 아니라, 상호 신뢰와 존중의 문화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다시 말해, 신뢰가 없는 협업은 형식일 뿐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고, 각자의 강점을 발휘하게 하는 관계적 신뢰의 구조 위에서 자란다.
오늘날의 조직은 기술과 정보로 움직이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사람’이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공동체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 사이의 관계와 문화다. 퇴계가 백록동규를 통해 세운 학문공동체처럼, 조직의 리더는 문화의 설계자이자, 구성원의 성장 여정을 돕는 멘토형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런 리더는 명령하지 않는다. 대신, 공동의 비전과 의미를 나눈다. 구성원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왜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깨닫게 한다. 그렇게 조직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집단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변화하는 살아 있는 학문공동체가 된다. 백록동규의 서원 정신은 바로 이런 ‘학습하는 조직(learning organization)’의 고전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AI 시대의 공동체 리더십은 더욱 그러하다. 인간과 기계, 세대와 세대, 전문 영역 간의 경계를 넘어 서로 배우는 문화가 필요하다. AI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하듯, 인간은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 그리고 이 두 학습이 맞물릴 때, 조직은 단순한 생산 단위를 넘어 지속 가능한 성장의 생태계로 거듭난다.
퇴계는 ‘함께 배운다’는 것을 단순한 협동이 아니라 도덕적 실천으로 보았다. 함께 성장하지 않는 학문은 독선이 되고, 함께 성장하지 않는 조직은 권력이 된다. 따라서 공동체 리더십의 핵심은 효율이 아니라 덕(德)이다. 리더가 먼저 덕으로 사람을 감화할 때, 구성원은 스스로 배우고 성장하게 된다.
“한 사람의 지혜는 불을 켜지만,
여러 사람의 지혜는 세상을 밝힌다.”
이것이 백록동규가 전하고자 한 마지막 가르침이다.
리더십의 완성은 내가 얼마나 뛰어난가에 있지 않다.
우리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가,
그것이 리더의 품격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