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을 넘어 지혜로 나아가는 길
퇴계 이황은 “천지만물의 이치가 하나로 통한다(理一分殊)”고 했다. 하늘과 땅, 인간과 사물은 각각 다르지만, 그 바탕의 원리는 하나라는 뜻이다. 이 사유는 오늘날 AI와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깊은 통찰을 준다. 인간의 사고와 인공지능의 계산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둘 다 ‘이해’와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같은 근원을 공유한다. 문제는 경쟁이 아니라,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하며 협력할 것인가이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더 이상 ‘지시’의 리더십이 아니라 ‘협업’의 리더십이다. 인간이 AI를 도구로만 보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가능성도 제한하게 된다. 반대로 AI를 파트너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자신의 감성과 윤리를 확장시키고, AI는 인간의 방향성을 통해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心)과 AI의 계산(算)이 만나야 비로소 ‘지혜(智)’가 완성된다.
스티븐 코비의 제6습관 ‘시너지를 내라(Synergize)’는 이 협업의 본질을 꿰뚫는다. 그는 “혼자서는 결코 생각해 낼 수 없는 제3의 길(Third Alternative)이 있다”고 했다. 인간의 직관과 AI의 분석이 만나는 자리에서 바로 그 제3의 길이 열린다. 의사결정, 창작, 교육, 과학의 영역 모두에서 인간과 AI는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예컨대,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을 찾아내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고 가치로 전환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반대로 인간의 직관과 경험은 편견에 갇히기 쉽지만, AI는 객관적 데이터를 통해 균형을 잡아준다. 리더는 이 둘의 조화를 설계해야 한다. AI가 ‘지식’을 제공한다면, 인간은 ‘의미’를 제공하고, AI가 ‘속도’를 주면 인간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퇴계는 “마음이 성정을 통제한다(心統性情)”고 했다.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마음이 중심이 되어야 질서가 선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AI 시대의 리더는 기술이 아닌 마음으로 기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도구가 주인이 되는 시대를 막는 힘은 윤리적 중심, 즉 인간의 마음이다. 백록동규가 공동체의 규범을 세워 서로를 바로잡았듯, 오늘의 리더는 인간과 AI의 관계에도 규범과 도(道)를 세워야 한다.
결국 AI와 인간의 협업은 단순한 기능적 결합이 아니라 도덕적 공존의 실험이다. 기술의 진보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함께 성장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AI와 함께 더 큰 지혜를 창조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퇴계가 꿈꾼 성학(聖學)의 완성은 혼자 깨닫는 성인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인간 공동체였다. 오늘의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AI와 인간이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공존의 도를 실천할 때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성학십도’가 완성된다.
“AI가 계산할 수 없는 것은 마음이며,
인간이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은 마음의 리더십이다.”
이 문장이 오늘의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대적 메시지다.
AI 시대의 리더는 기술을 넘어 지혜를 조직하는 사람,
그리고 인간과 기계가 함께 배우는 공존의 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