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죽음을 준비한다고 말한다. 재산을 정리하고, 유언을 남기고, 장례의 형식을 미리 정해 두는 일들. 물론 그것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죽음이 준비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깊은 준비는 서류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 이루어진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란 갑작스러운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리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이라도, 삶이 준비되어 있었다면 그 죽음은 완전히 낯설지 않다. 반대로, 오래도록 병상에 누워 맞이한 죽음이라도 삶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순간은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된다. 죽음의 질은 죽음의 방식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결정한다.
삶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미루어진 질문들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왜 살아왔는지, 무엇을 소중히 여겼는지,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남겼는지에 대한 질문들. 이 질문들을 외면한 채 살아온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인다. 모른 척하고, 피하고, 마지막까지 유예하려 한다.
준비되지 않은 삶은 늘 현재를 살지 못한다. 삶이 언젠가 시작될 것처럼 여기며, 지금은 임시의 상태로 취급한다. 이런 삶에서 죽음은 언제나 ‘너무 이른 사건’이 된다. 아무리 긴 세월을 살아도, 준비되지 않은 삶에는 죽음을 맞이할 시점이 오지 않는다. 늘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 속에 머문다.
'티벳 사자의 서'는 죽음의 순간에 의식이 어떤 상태에 놓이는지를 반복해서 묘사한다. 그 핵심은 단순하다. 죽음의 순간에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익숙한 마음의 습관이라는 점이다. 평생을 분주함 속에서 살았다면, 죽음의 순간도 분주하다. 평생을 회피 속에서 살았다면, 죽음 앞에서도 회피한다. 삶에서 훈련되지 않은 의식은 죽음에서 갑자기 깨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삶은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된다. 죽음은 삶의 예외가 아니라, 삶의 연장이다. 삶에서 미루어 온 화해는 죽음 앞에서도 미루어진다. 삶에서 말하지 못한 말은 죽음 앞에서도 남는다. 그렇게 미완의 삶은 미완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문장은 경고이자 동시에 초대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준비는 이미 시작된다. 삶을 완벽하게 정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을 임시가 아닌 진짜 삶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된다. 하고 싶은 말을 미루지 않고,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뒤로 미루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죽음 준비다.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의 삶을 준비 없이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에게 죽음은 낯선 방문자가 아니라, 이미 여러 번 마주쳐 온 얼굴로 다가온다. 준비된 삶은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하나의 완결된 순간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