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전부인가?”라는 질문

지금의 익숙함을 떠날 가능성

by 이재현

어느 날 문득, 아주 조용한 순간에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이게 전부인가?”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크게 모자란 것도 아닌 삶 속에서 이 질문은 불쑥 떠오른다. 남들이 보기에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밀려온다. 더 가져도 채워지지 않고, 더 성취해도 잠시뿐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이게 전부인가.


이 질문은 배은망덕이 아니다.
오히려 성숙의 신호에 가깝다.


십우도의 첫 단계, 심우(尋牛)는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소를 찾으러 나섰다는 것은 이미 지금의 상태가 충분하지 않다는 자각이 생겼다는 뜻이다. 그 자각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다. 익숙한 세계가 더 이상 완전하지 않다는 감각, 그 틈이 여정을 부른다.


신화의 언어로 말하면, 이것은 영웅에게 들려오는 ‘부름’이다. 집은 여전히 안전해 보이지만, 마음은 더 이상 거기에 머물 수 없다. 어딘가로 떠나야 할 것 같은 기척이 있다. 그 기척은 외부의 사건이 아니라, 내부의 각성이다.


심리의 언어로 말하면, 의식은 무의식의 깊이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겉으로는 기능하는 삶이지만, 그 밑에서는 또 다른 가능성이 꿈틀거린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억누르거나, 바쁨으로 덮거나, 합리화로 설명해버리려 한다. 그러나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


“이게 전부인가?”라는 물음은 삶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넘어가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퇴계가 말한 성학의 출발도 여기에 있다. 공부는 이미 다 안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시작되지 않는다. 자기 마음이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족함의 자각은 열등감이 아니라, 성장의 문이다.


우리는 이 질문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의 익숙함을 떠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우도는 말한다. 질문을 외면하지 말라고. 소를 찾는 여정은 이 한 문장에서 시작된다고.


“이게 전부인가?”


그 물음이 들려오는 날, 우리는 이미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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