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이 말한 그림자의 속삭임

그림자를 외면하면 불안은 커진다

by 이재현

우리는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것을 좋아하고, 이런 방식으로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속에는 언제나 빠진 부분이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정한 모습만이 ‘나’가 되기 때문이다. 인정하지 않은 것들, 드러내지 않은 감정들, 부끄러워 숨겨둔 욕망들은 다른 이름으로 남는다. 그것이 바로 그림자다.


칼 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억눌린 자아의 측면이 그림자로 남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고 싶어 하면서 분노를 숨기고, 성실한 사람이고 싶어 하면서 게으름을 밀어낸다. 그러나 밀어낸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림자는 빛이 강할수록 더 또렷해진다.


십우도에서 소는 처음부터 사납게 등장한다. 도망가고, 붙잡히지 않고, 고집스럽게 달아난다. 이것은 길들여지지 않은 본능, 통합되지 않은 자아의 상징이다. 우리는 소를 잃어버렸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소를 외면해 왔는지도 모른다. 나답지 않다고 여긴 것들을 자꾸 밀어내면서, 결국 나의 일부를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다.


그림자는 큰 사건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속삭임이다.

괜히 예민해지는 날, 이유 없이 짜증이 나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질투, 반복되는 실수, 반복되는 관계의 갈등. 우리는 그것을 외부 탓으로 돌리지만, 그림자는 조용히 말한다. “나를 보라”고.


그림자를 외면하면 불안은 커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과 싸우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융은 개성화의 과정이란 그림자를 직면하고 통합하는 여정이라고 했다. 통합이란 나쁜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다양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소를 잡아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십우도의 첫 단계에서 우리는 소를 찾으러 나선다. 그때 소는 외부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정이 깊어질수록 알게 된다. 소는 나와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나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을.


그림자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을 때, 여정은 진짜로 시작된다.
불안은 적이 아니라 안내자가 되고,
불편함은 도망칠 이유가 아니라 돌아볼 이유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소를 잃은 것이 아니라,
소의 일부를 부정해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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