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敬)의 시작

경은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자세다.

by 이재현

소는 거칠고, 자아는 저항하며, 영웅은 첫 시련 앞에서 흔들린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큰 결심도, 더 강한 의지도 아니다. 십우도가 은근히 가리키는 것은 전혀 다른 태도다. 바로 경(敬)이다.


퇴계 이황은 『성학십도』에서 학문의 근본을 경에 두었다. 경은 긴장하거나 굳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는 상태,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는 깨어 있음이다. 그것은 격렬한 수행이 아니라, 조용한 지속이다.


깨달음이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대개 흥분에 기대기 때문이다.
강렬한 체험은 있지만, 지속적인 태도는 없다.


경은 바로 이 지점을 보완한다. 소를 한 번 본 뒤에도, 도망치면 다시 찾고, 흔들리면 다시 돌아오는 반복의 힘. 통찰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다만 그 자리를 지키는 태도. 이것이 경의 시작이다.


경은 통제와 다르다.
억지로 마음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흩어질 때마다 알아차리고 다시 세우는 것이다.


십우도의 목동이 소를 억지로 묶어두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는 살아 있는 존재다. 억압하면 더 거칠어진다. 그러나 조용히 지켜보고, 반복해서 다가가고, 인내하며 함께 걷다 보면 조금씩 관계가 형성된다. 경은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자세다.


현대인은 속도에 익숙하다. 빨리 이해하고, 빨리 성취하고, 빨리 결과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경은 느림의 힘이다. 오늘 마음이 흔들렸다면, 내일 다시 세운다. 분노가 올라왔다면, 알아차리고 돌아온다. 완벽을 요구하지 않고, 지속을 선택한다.


경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작은 선택의 누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연습,
자기 마음을 가볍게 다루지 않는 태도.


이것이 길들이기의 진짜 시작이다.


깨달음은 순간이고, 시련은 통과해야 할 문이다.
그러나 경은 길 위에서 계속 걸어가게 하는 힘이다.


소를 붙잡으려 할 때 도망치는 이유는, 아직 경이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목동은 안다. 소를 이기려 하지 말고, 함께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경의 시작은 바로 그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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