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음의 경지

소를 타고 집으로

by 이재현

오래 씨름하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힘으로 끌던 소가
이제는 스스로 발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이 장면이 바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단계다.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억누르지 않고,
과장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걷는다.


1. 애씀의 끝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애써 왔다.

더 나아지기 위해,
더 성숙해 보이기 위해,
더 단단해지기 위해.

그러나 애씀이 지나치면
또 다른 긴장이 된다.


이황이 말한 경(敬)도
힘을 주는 태도가 아니라
흩어진 마음을 고요히 모으는 상태였다.

애쓰지 않음은
무관심이 아니라
과도한 힘을 내려놓는 것이다.


2. 무위(無爲)의 의미

동양 사상에서 말하는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자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말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계절이 바뀌듯,
억지 없이 이루어지는 질서.

내면이 정렬되면
행동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3. 통합 이후의 평온

칼 융이 말한 개성화의 길도
결국은 통합 이후의 평형을 향한다.

그림자를 직면했고,
괴물을 인정했고,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조율했고,
동굴을 통과했다면,

이제 남는 것은
억지 없는 중심이다.


감정이 올라와도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
성공이 와도
자기를 잃지 않는다.


4. 소 위에서 부는 피리

십우도의 이 장면에서
사람은 소 위에 앉아 피리를 분다.

피리는 노력의 상징이 아니라
여유의 상징이다.

싸움이 끝났다는 뜻이며,
내면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신호다.

애쓰지 않음은
도달점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다.


5. 노년의 품격

긴 세월을 살아온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과장되지 않은 평온이다.

무엇을 더 증명하려 하지 않고,
누구와 더 겨루려 하지 않고,
그저 자기 자리에서 숨 쉬는 모습.

이것이 애쓰지 않음의 경지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어디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다.


오늘 무언가를 지나치게 붙들고 있다면
잠시 손을 풀어 보라.

소는 이미
당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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