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황금기

by 이재현

지난 주말 4명의 동창이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친구 A는 은행원이었는데 50대 초반에 그만두고 건물 관리사가 되어 지금까지 직장에 나가고 있었으며, B는 대기업에서 2년 전에 정년으로 퇴직하였고, C는 무역업을 하였는데 건강 문제로 사업을 접고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친구 B와 C가 지금도 일을 하는 친구 A를 부러워합니다. 대단하다고 칭찬을 합니다. A는 얼굴에 화색을 띠고 어깨를 들썩이며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가운데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아직도 직장에 나가지?, 직장생활이 쉬운 일이 아닌데. 이제 직장 일 그만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해도 될 텐데. 돈을 계속 벌어야만 하는 사정이 있나?.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왜 저렇게도 일하는 것을 부러워할까?


우리 또래의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합니다. 가족을 위해 평생 일을 했다고, 이젠 좀 쉬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일하는 친구를 보면 부러워합니다. 나는 그들이 진짜로 부러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돈 버는 것이 부러운 건지, 일하러 다니는 곳이 있다는 것이 부러운 건지. 두 가지 다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적인 활동은 아직도 나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가장으로서 남자에게 돈을 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능력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은퇴함으로써 우리는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직장이라는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일을 통하여 나를 인정하며 그곳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나를 인정해 주는 곳도 없어졌습니다. 왠지 사회로부터 밀려난 기분입니다.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 나가 함성을 지릅니다. 그곳에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나는 그곳에서 나의 목소리를 냅니다. 아직도 사회는 나를 원하며, 나는 할 일이 있고 아직 쓸모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후반전을 이야기합니다. 일정한 나이가 되었다고, 직장으로부터 은퇴하였다고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동안 사회와 가정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사회에서는 필요한 사람이 되었고, 가정에선 가장으로써 최선을 다했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은 전반전에 우리가 지켜야 했던 관념이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친구 S는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교내는 물론 외부 기관에서 주최하는 사생대회에서 자주 입상을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그가 화가가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40년 만에 만난 그는 대기업의 중역이 되어있었습니다. 5년 전에 그는 직장에서 은퇴하였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개인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요즘엔 동기 카톡방에서 예쁜 글씨로 가슴을 울리는 글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습니다.


100세에 가까운 어느 노 교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청년이 아니라 60대로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인생 황금기는 삶의 경험을 통하여 많은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진 65세부터 75세까지였답니다. 2년 전 65세를 앞에 두고 나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잘한 것은 무엇이고, 아쉬웠던 것은 무엇이며, 나에게 10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나의 삶에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습니다. 자서전을 쓰기로 하였고, 65세가 되는 날 나는 나에게 그 책을 선물하기로 하였습니다.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였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쓴 글을 모아 ‘브런치 북’을 발행하였습니다.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자기는 요즘 그냥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고. 삶은 시간 속에 있으며 시간은 경험이고, 경험되지 않은 시간은 죽은 시간입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묻혀버렸던 나의 지난 시간을 하나의 경험으로 살려내고 있습니다. 나는 또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현재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계속 글을 쓸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경험을 만들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주겠습니다. 매년 책 한 권을 쓸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살짝 가져봅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내 인생의 황금기는 그렇게 진행될 것입니다.


”인생의 전반기에 우리는 사회에 봉사한다. 이것은 종속이다.

인생의 후반기에 우리는 내면으로 돌아선다. 이것은 해방이다 “ (‘신화와 인생’에서/조셉 캠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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