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상무와 단장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상무) “야! 너는 왜 그렇게 싸가지가 없니,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단장) “말을 들으면 당신들이 다르게 대합니까?”
(상무) “다르게 대하지”
(단장) “말을 잘 듣는다고 다르게 대하는 게 하나도 없던데요.”
(상무) “니가 말을 들어 본 적은 있니? “
(단장) ”후회합니다, 그때를. 말을 잘 들으면 부당한 일을 계속 시킵니다. 자기들 손이 더러워지지 않을 일을. 그러나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조직은 말을 안 들어도 일을 잘하면 그냥 내버려 둡니다. “
“이(李) 대리! 이 예산서 2억 원 증액시켜 11억 원으로 다시 작성하여 결재 올리세요.” 과장은 내가 작성한 9억 원의 예산서를 반려하였습니다. 나의 경험으로 추정되는 이 프로젝트의 적절한 예산은 10억 원입니다. 내가 9억 원의 예산을 작성한 이유는 달성하기 어려운 예산을 목표치로 할 때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창의적인 예산 절감 방안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절감 방안을 찾아내지 못해 9억 원 이상의 공사비가 투입될 경우 우리는 공사를 잘 실행하지 못했다는 상부의 질책을 감수해야만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과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산은 좀 여유 있게 11억 원으로 편성하고 공사를 10억 원에 실행한다면 1억 원의 예산을 절감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장과 나는 이런저런 부분에서 의견이 달랐습니다. 공사에 들어가는 부품 중에는 외국에서 수입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없기에 가격이 매우 고가(高價)입니다. 나는 종종 국산화를 제안합니다. 그러나 국산화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이 버겁다는 이유로 나의 제안은 무시되곤 하였습니다.
나는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입니다. 신입사원 시절에는 야근(퇴근 시간 후에 하는 근무)하라는 팀장 말에 약속을 핑계로 당당하게 퇴근하는 용기 덕분에 생애 첫인사 평가에서 하(下)를 받았습니다. 동기들이 연말 보너스 200% 받을 때 나는 100%만 받는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다. 바로 회사를 그만두려 하였으나 지금 나가면 지는 것이란 생각에 참았습니다. 나중에 당당하게 나가리라 다짐하면서 실력을 쌓아나갔습니다. 한 번은 새 팀장이 나를 보고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사람은 아니네 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전 팀장으로부터 고분고분하지 않은 인물로 인계받았던 모양입니다. 나는 과장으로의 진급에 실패하였고, 그 발표가 있던 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1년 뒤 창업을 하였고, 그 후 30년 동안 나는 누구의 결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선택도 내 몫이었고 책임도 내 몫이었습니다.
나는 신화속의 인물 시시포스를 좋아합니다.
“신들은 시시포스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렸었다. 시시포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바위는 몇 분이 지나자 다시 아래 들판으로 굴러 내려간다. 그는 아래로 내려가서 다시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한다.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 그는 다시 들판으로 내려간다. 무겁지만 꾸준한 발걸음으로,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고역을 향해서 내려간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한 걸음씩 내려가는 순간 그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며, 그의 바위보다 강하다.
성공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한 걸음씩 떼어놓는다면 사실 고뇌가 들어설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시시포스는 자신의 비참한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이렇게 미리 안다는 것, 그에게 고뇌를 안겨주는 이 통찰은 동시에 그의 승리의 면류관이기도 하다. 경멸로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은 없기 때문이다.” 까뮈는 결론을 내린다. “사람의 삶에 대한 애착에는 세상의 그 어떤 비참함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있다.”라고.
신들을 멸시한 시시포스, 자신의 운명에 구원을 호소하지 않는 시시포스, 성공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는 시시포스 그러기에 그는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다시 드라마 <스토브리그> 이야기입니다. 팀장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물어봅니다.
(팀장) ”엄마, 진짜 아니다 싶은 행동을 하는 우리 편이 있어, 어떻게 해야 돼? “
(엄마) ”이건 아니다 말을 해 “
(팀장) ”안 들어 먹어 “
(엄마) ”그럼 일단 편을 들어줘 봐, 어떻게 되나 “
(팀장) ”그게 아니다 싶은 길인데! “
(엄마) ”니가 그 사람보다 똑똑하냐? “
(팀장)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