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아내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연애도 결혼도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일도 모두 아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아내의 하고 싶은 일들이 싫지 않았고, 그래서 그 일에 충실히 따랐습니다. 아내의 용기는 그 일이 얼마나 힘들지는 상관하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제의 파트너가 필요해서 처음 만났습니다. 축제에 파트너를 초대하는 것은 마지막 날 쌍쌍파티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우리 축제에 이틀을 참석하겠다 했고, 자기 축제에는 전야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날까지 4일이나 나를 끌고 다녔습니다. 물론 나는 기분이 좋아 따라다녔습니다. 심지어 마지막 날에는 자기 어머니를 초대해서 나는 긴장시켰고, 어머니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본격적인 연애는 시작되었습니다.
아내는 서울에 살았고 나는 인천에 살았습니다. 아내는 수시로 나를 찾아 인천에 왔고, 나를 못 찾으면 자취방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런 그녀를 나는 다시 서울까지 바래다주고 인천으로 오는 막차를 타곤 했습니다. 나의 자취 집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아가씨가 총각을 엄청 좋아하나 봐 “. 그해 12월 나는 취업이 되어 울산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서울역에서 나는 생전 처음 여인의 눈물 배웅을 받았습니다. 아내는 오직 내 곁으로 오기 위해 부산에서 순위 고사를 보았고, 이듬해 부산의 한 중학교 교사가 됩니다.
나는 시골의 가난한 집 5남매 중 장남입니다. 부모님은 물론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혼자 몸으로 어렵게 어렵게 키워서 서울로 대학까지 보낸 딸을 나 같은 사람에게 시집보낸다니 어찌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어머니를 협박하고 설득해서 결혼을 했고, 부산에서 울산으로 학교를 옮깁니다. 당시 그 동네의 교사들은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려고 노력했지, 부산에서 울산으로 옮기려는 사람은 없었다 합니다. 아내는 다른 사람의 눈에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결혼 후 아내는 시누이 둘을 울산에 데려와 공부를 시키고, 막내 시누는 대학까지 졸업을 시킵니다.
아이 둘이 연년생으로 태어났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공부를 곧잘 했습니다. 아마 아빠의 머리(?)와 엄마의 열정 덕이었을 겁니다. 지방에서 중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모두 서울에 있는 외고로 진학하였고, 대학은 미국으로 가겠다는 목표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아내는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갔고, 나는 울산에 남아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우리에게 위기가 왔습니다.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생활고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의 장래가 불투명해졌습니다. 아내는 새벽에 녹즙 배달을 하며 서울생활을 버텨나갔고, 딸은 졸업했지만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아내의 건강에 이상이 왔습니다. 아내는 나를 불신하였고 갈등은 증폭되었습니다. 딸은 그렇게 살려거든 이혼하라 하였고, 아들은 우리 부부싸움을 말리기 위해 경찰을 불렀습니다. 우리 가족은 중심을 잃고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었습니다. 퇴로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그대로 뛰어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둘은 동시에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앞이 보이지 않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1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딸은 대학을 마치고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결혼도 하였고 곧 있으면 엄마가 됩니다. 아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을 다니다 지금은 학교로 돌아가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이 미국으로 떠난 후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15년 경력을 가진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우리 가족 모두가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환경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자칭 가정경영 CEO가 되었습니다.
딸이 쓴 글에서 엄마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가계부 쓸 줄도 모르던 엄마는 아빠의 사업실패 이후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제적 가장이 되었고, 15년 가까이 그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의미와 목표를 찾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더 대단한 것은 그 와중에도 철없음과 소녀다움을 유지한다는 것인데, 이런 철없는 엄마를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는 인정합니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범을 이겼다. “라고.
”여자는 생명의 에너지이다. 남자는 그 에너지에 올라타 달리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삶을 향해 직접 지시해서는 안된다. 결혼은 여자가 주도하고 남자가 따라가는 것이다. “ 신화학자 조셉 캠블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