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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리 Jan 18. 2021

올해는 무엇을 포기할까

지난해 어느 모임에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커리 우먼입니다. 그는 기업의 CEO에게 코칭을 합니다. 그것도 영어로. 그의 꿈은 기업의 경영자가 ‘참나(True self)’- 그가 사용한 단어입니다.-를 찾도록 도와주는 코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휴식이 필요했고 그래서 지금은 잠시 일을 뒤로하고 휴양 중입니다. 정기적으로 절에도 가 스님과 많은 이야기도 나눕니다. 그리고 쉬는 동안 책을 하나 쓰기로 했습니다. 그의 휴식 스케줄은 빈틈이 없었고, 그의 휴식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였습니다. 그는 휴식 기간이 끝난 후의 삶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휴식을 하는 동안은 합리와 이성에서 벗어나 그냥 예술적인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일상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보고자 ‘조금 적어도 좋아’ 지난 시즌에 참여하였습니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매일 글을 쓴다는 것, 그것도 다른 사람이 읽게 될 수도 있는 글을 매일 쓴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먼저 나는 글을 잘 쓰겠다는 마음을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글을 잘 쓰겠다고 내가 아무리 노력 한들 글이 잘 써질 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노력하면 매일 조금씩은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 글이 있는 그대로 세상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 무심하기로 하였습니다. 시즌이 끝나면서 조그만 책 하나가 탄생하였습니다. 뿌듯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책 표지 디자인을 받고 너무 기분이 좋아 성급한 마음에 고교 동창생 카톡방에 소개하였는데 한 친구가 다섯 권의 책을 주문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10권의 책을 추가로 주문해 놓은 상태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친구가 주문한 책을 보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섯 권을 보내주고 책값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요즘 어찌 지내냐는 친구의 안부에 나는 천연덕스럽게 집필 중이야 대답하며 멋쩍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해부터 누군가는 나를 작가라고 호칭합니다. 의례적으로 그렇게 부르나 보다 하고 크게 괘념치 않았었는데 이제는 내 이름의 책이 하나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젠 글을 작가의 마음으로 써야 하나라고 생각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작가에겐 독자가 있고, 작가는 자기의 생각과 느낌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도록 표현해야 하는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나의 글쓰기에는 독자라는 개념이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들, 남겨놓고 싶은 이야기들을 적는 것으로 만족했으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한다는 생각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독자를 고려했다면 책을 만들겠다는 용기를 쉽게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은 나왔고, 한 친구가 내 책을 다섯 권이나 주문했으니 책값을 지불하고 내 글을 읽겠다는 독자가 생긴 것입니다.   

  

나의 글에 함께 공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 나이 또래의 남성들? 인생의 후반전에 관심 있는 후배들? 건전한 가정을 희망하는 사람들? 그러나 한 사람은 확실합니다. 내 글을 항상 읽고, 냉정하게 비평하고, 이런저런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 바로 나 자신입니다. 좋은 작가가 되려거든 좋은 독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독자가 되려면 많은 글을 접하고 다양한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지난해에는 글을 쓴다는 핑계로 책을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의 글을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진심 어린 댓글도 달고, 부럽고 탐나는 표현은 메모해 두어야겠습니다. 유능한 독자가 되어 미래의 내가 진정한 작가가 되도록 안내하겠습니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을 포기하고 먼저 좋은 독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병이 나거나 사고가 나는 것은 “너는 지금 변화해야 한다”라고 무의식이 의식에게 보내는 신호랍니다. 변화한다는 것은 세상을 대하는 시각, 즉 세계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려면 이 세계가 나에게 요구하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것들을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런 것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나를 방해하는 장애물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예술적인 하루 보내세요”라는 메시지를 받곤 하였습니다. 올해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포기하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자세를 취하는 예술적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해야겠습니다. 포기하는 것은 부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모습에만 매달리면, 우리는 다음의 모습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달걀을 깨트리지 않고서 오믈렛을 만들 수 있겠는가. 파괴가 있은 다음에 창조가 있다.”(신화와 인생/조셉 캠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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