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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Aug 19. 2020

새 보물 납시었네 : 신국보보물전

코로나 19 이후 첫 전시 관람기

Ⅰ.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


 어느 날 짝꿍이 카톡으로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준비한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관련 링크였다. 코로나 19 확산이 장기화됨에 따라 가장 흔한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인터파크에 바로 접속했다. 다가오는 주말, 바로 전시를 보고 싶은 욕심이 손가락을 지배했다. 하지만 이미 7월 26일 전시는 전 회차 매진이었다. 다른 날짜를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8월 2일 3회 차 티켓을 바로 예매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티켓팅





Ⅱ. 코로나 19 이후 첫 전시 관람


 7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 19 발생 이후 첫 문화예술 관련 일정을 소화했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수두권에 있는 국립문화예술 시설 운영이 재개됨에 따라 전시회 방역 현장을 안전 점검하고 특별전을 관람했다"며 "코로나 19로 지친 국민이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안전한 문화활동을 통해 일상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 설명했다. 오랜 기간 폐쇄되고 휴관되었던 문화시설들이 8월을 기점으로 본격 기지개를 켜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문화예술 관련 일정 소화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며,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대통령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나 조차도 코로나 19 발생 이후 첫 전시 관람이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였다. 올해 첫 전시 관람은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전, 원주 '뮤지엄 산'에서 본 전시들이었고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은 직장인 극단에서 활동하는 친구의 <나 혼자 산다> 공연이었다. 그 흔한 영화도 최근에 본 <반도>와 <강철비>가 코로나 19 발생 이후의 유이한 영화 관람이었다.


 아마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들이 모두 나와 비슷한 걸 느끼지 않았을까? 늘 주변에 존재하기에 소중함을 잊고 지냈던 무언가에 대한 갈증 말이다.






Ⅲ.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8월 3일이 되었다. 내 기다림의 열정이 너무 뜨거워서 수증기가 발생한 걸까? 서울에는 억수 같은 비가 내렸다. 이 비는 6월 24일부터 시작돼 전시를 본 8월 3일을 지나 13일간 더 내리다가 끝이 났다. 무려 54일간 한반도에는 비가 내렸다. 2020년은 여러모로 기록적인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창궐했고 기생충 신드롬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호주에는 대형 산불이 퍼졌고 여러 정치인들의 참혹한 이면을 마주했다. 게다가 아직도 2020년은 5개월이나 남았다.


 흡사 '스콜'같이 내리는 비를 뚫고 용산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했다. 한 때는 공주 '전통문화학교'에 입학해 학예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을 정도로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이 컸다. 대학생 때는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예사 선생님들과 축구동아리 활동도 함께 할 정도로 박물관은 내게 친숙한 곳이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미래까지 그려볼 수 있는 박물관 특유의 그 분위기가 참 좋다.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


 이번 전시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확산으로 휴관되었던 공공시설이 재개관하며 준비한 첫 전시였기에 여러 가지 방역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우선 하루를 4회 차로 나누어 회차 별 200명만 입장 가능하게 했다. 수요일과 토요일은 특별히 5회 차 야간 전시를 운영하여 많은 인원이 전시를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두 번째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 있도록 바닥에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가족끼리 함께 관람을 하더라도 스티커 위에 한 명씩만 서 있도록 안내원들이 통제를 했다. 통제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보다는 안전을 위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 번째로 QR코드를 통한 출입 명부 작성을 의무화했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명부를 작성하기 어려운 관람객을 위해 종이 명부를 비치해놓았다. 혹여나 관람객 중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접촉자를 파악하여 지역사회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책이다.


네 번째로 열화상 카메라와 발열체크였다. 많은 인원을 일일이 온도계로 발열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비효율적일뿐더러 밀접 접촉을 통한 바이러스 확산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메인 전시장과 특별전시장 두 군데 모두 설치되어있던 열화상 카메라는 관람객의 편의와 안전 모두를 고려한 배려라 느껴졌다.


 다섯 번째로는 박물관 내 어디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소독제와 소독기였다. 코로나 19 시대에 너무나도 흔한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동선마다 잦은 빈도로 비치되어있던 소독제는 전혀 지나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코로나 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노력

 

 예전처럼 티켓만 소지하고 있다면 프리패스로 전시장에 입장할 수 있었던 시기가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는 질병에 익숙해진 것 같다. 이제는 어딜 가든 발열체크를 하지 않고 소독제가 비치되어있지 않으면 굉장히 불안하고 불편해진다.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계속 변화시키고 있다.





 이번 전시는 기관, 개인, 사찰 등 34곳에서 대여해온 국보 및 보물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만약 이번 전시를 놓치면 전국을 돌며 일일이 들여다봐야만 가능했다. 전시는 ■역사를지키다. ■예술을 펼치다. ■염원을 담다. 라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있었다.


 ■역사를 지키다에서는 국사시간에 배우고 여러 책과 강의에서 보고 듣기만 했던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만나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삼국에 대한 이야기부터 다양한 역사가 담긴 두 역사서가 이제야 국보로 승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또 하나 반가웠던 것은 <조선왕조실록>이었다. 우리나라의 중세시대가 어땠는지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승하하고 다음 왕이 즉위하면서부터 편찬된다. 절대로 현왕이 선왕의 기록을 보지 못하게 제도를 만들어 철저히 관리했다. 세종대왕도 아버지인 태종의 실록을 보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왕실의 행사 모습을 그림을 기록한 <기사계첩> 또한 흥미로웠다.


'역사를 지키다' 전시


■예술을 펼치다에서는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정선의 <풍악내산총람도>를 비롯한 실경산수화의 극치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전체 길이가 8.5m에 달해, 한 프레임에 담아낼 수 없었던 이인문의 <강산무진도>에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예술을 펼치다' 전시


■염원을 담다에서는 우리나라 국보 및 보물의 절반이 불교문화재인 것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각종 <사리장엄구>는 우리나라 불교가 부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얼마나 그렸었는지를 알 수 있었고, 아주 작은 장엄구에 녹아진 우리의 예술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도 느낄 수 있었다. 


 불교 경전을 인쇄하기 위한 <묘법연화경목판>은 사람이 깎은 거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목판 기술이 우리나라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염원을 담다' 전시


 이 전시가 특히 좋았던 것은 작품 설명 아래에 관람자가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들이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혼자 왔든, 연인이 왔든, 가족이 왔든, 이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아보는 과정은 전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전시장에서만 보고 끝내는 게 아니라 내 삶으로 전시를 확장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일제시대를 겪고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것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뛰어난 지를 부정받고 또 부정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유무형의 콘텐츠들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이었으며, 소박하면서도 화려했고, 절제하면서도 표현의 극치를 달렸다. 고려청자만 봐도 있듯, 아름다운 청자를 빚어낼 있는 예술가들은 없이 많았다. 우리는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었지만, 우리만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2010년대가 지나고 2020년대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문화와 예술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가장 한국 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더 이상 허무맹랑하고 국뽕에 취해하는 헛소리가 아닌 것이다.


Ⅳ. 두 가지 중요한 질문


 이 전시의 핵심 질문 두 가지가 처음 들어가는 입구에 하나, 나오는 출구에 하나 적혀있었다. 


전시의 두 가지 핵심 질문


 입구에 있는 질문은 "국보와 보물,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라는 물음이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어린이부터 청소년들은 대입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기 바쁘고, 청년들은 취업과 사회초년생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바쁜 일상을 살아내야 하고, 중장년들은 바쁜 일상을 투자해 얻어낸 자리와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 노년에는 이러한 질문이 살아오며 쌓인 많은 것들에 비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전시장 입구에서 문구를 마주하는 것은 이미 새로운 경험의 시작되었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전시를 관람할 사람, 혹은 이 글을 우연히 마주하게 된 사람들이 꼭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나 국민들에게가 아닌, 나 자신에게 '국보와 보물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말이다.



 전시의 흐름을 따라 마지막 출구에 도달하면 새로운 질문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국보와 보물은?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앞선 질문이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질문이라면, 질문은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질문이다. 나는 질문 앞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의 우리 삶에서 국보와 보물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전시에 다녀간 수많은 관람객 각자의 답변이 벽면에 늘어져 있었다. 눈으로 그들의 생각을 좇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가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각자의 가치관과 신념을 가진 인간이 참 좋다.


각자가 생각하는 미래의 국보와 보물






2018년 연말,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봤던 <조선, 병풍의 나라> 전시를 내가 본 최고의 전통예술 전시라고 생각한다. 오늘 본 <신국보보물전 : 새 보물 납시었네>도 이에 지지 않는 멋진 전시라고 평하고 싶다. 최근 <간송미술관>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 소장품을 경매에 넘긴다는 기사가 나왔다. 참 많이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 우리의 것들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은 막대한 부와 어떤 정치적 권력도 아님을 안다.


 그 유산의 주인인 우리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바로 힘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를 보고 내가 느낀 것들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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