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 글에는 영화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20년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기억에 남는 영화는 '천문', '반도', '남산의부장들' 정도로 이마저도 반도를 제외하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인 2020년도 초에 본 것으로, 코로나 시대에는 거의 영화관에는 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자주 하는 문화생활은 무엇인가요? "라는 설문에 독보적 일등은 늘 '영화관람'이 차지해왔을 정도로 우리에게 영화는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확산되어 일상이 무너진 지금 똑같은 질문인 "가장 자주 하는 문화생활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여전히 '영화관람'은 일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영화관람의 장소가 영화관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넘어왔을 뿐이다.
2019년부터 이미 '넷플릭스'는 하나의 신드롬을 넘어 대중성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상파의 시청률과 광고시장 규모는 지속적으로 하향새를 기록하고 있고, 넷플릭스와 더불어 '왓차', '옥수수', '푹' 등 다양한 형태의 'OTT 서비스'는 새로운 방송매체로서의 지위를 높여가고 있다.
2020년 문화예술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내 일상도 무너뜨렸는데,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도 사랑하는 글 쓰는 시간도 내게서 앗아갔다.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는 건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문화재단의 사업들이 종료되어가는 시점인 11월 말에 되어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지난 주말 두 편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평화로운 금요일을 더욱 아늑하게 해줄 영화 한 편을 찾다가 '미드나잇 인 파리'를 틀었다. 예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던 영화였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미국의 영화 시나리오 작가 '길'이 예비신부인 '이네즈'와 방문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리고 있다. 길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닌 소설가를 꿈꾸지만 자신의 글에 자신이 없다. 자기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을 끔찍히도 싫어한다. 반면 이네즈는 길이 계속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기를 바란다. 이 커플은 어떻게 결혼을 계획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서로 맞지 않는 사이다. 길은 파리에 이네즈는 미국에 살고 싶어한다. 비를 맞으며 파리 시내를 걷는 걸 낭만으로 생각하는 길을 이네즈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길은 밤늦게 파리 시내를 혼자 걷다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게 되고, 20세기에나 타고 다녔을 법한 자동차 안에서 그를 부르는 의문의 사람들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이동하게 된다. 길을 태운 사람은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였다. 그리고 그에게 이끌려 들어간 술집에는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이후 이어진 시간 여행에서는 '헤밍웨이', '파블로 피카소', '거트루드 스테인', '살바도르 달리' 등을 만나게 된다. 특히 과거의 파리에서 만난 '아드리아나'는 길에게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길은 자신이 존경하는 예술가들과 만나는 시간이 믿기지 않는다. 1920년대의 파리. 길은 '황금시대'에 와있다는 것에 무한한 감동을 느낀다.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지 못했던 길은 거트루드 스테인에게 글을 보여주고 좋은 비평을 듣게 된다. 헤밍웨이 역시 그의 책을 감명깊게 읽는다. 길은 더이상 두려울 게 없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느낀 길과 아드리아나는 파리 시내를 걷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차가 아닌 마차를 타게 된다. 그들이 도착한 과거는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였다. 그곳에서는 '앙리 드 툴주르 로트레크', '폴 고갱', '에드가르 드가' 등을 만나게 된다. 아드리아나가 의상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게된 드가는 그녀에게 샤넬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한다.
길이 21세기에서 20세기로 돌아가 '황금시대'에 푹 빠져들었듯, 아드리아나는 20세기에서 19세기로 돌아가 그녀가 생각하는 '황금시대'에 정착하기로 한다. 길은 그런 아드리아나를 말리고 싶지만 그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내 그녀를 두고 21세기로 돌아온다.
길은 누구나 과거를 '황금시대'라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과거를 좇는 삶은 결코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도 아드리아나를 보며 느끼게 된다. 결국 길은 현재에서 행복을 찾기로 결심한 것 같다. 비 오는 파리를 함께 걸을 수 있는 음반가게 점원 '가브리엘'과 함게 밤거리를 걸으며 말이다.
영화 콜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스릴러 영화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연히 보게된 영화소개 채널에서 이 영화를 접하면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요일엔 평화, 토요일엔 공포를 맞보게 될 줄은 모른 채.
콜은 '유복한 부잣집 딸' 역할에 절대 캐스팅 되지 않는 배우 박신혜(서연 역)와 영화 버닝을 통해 존재감을 알린 배우 전종서(영숙 역)가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서연이 어느 집을 찾아가며 시작된다. 이 집은 서연이 어렸을 때 부모님이 계약하려 했던 집이다.(영화 스토리상 그 집이 원래 서연네 집이었는지, 추후에 서연이 구매를 한 건지는 알 수 없다.) 시골 마을 큰 저택, 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둠이 내려 앉은 집은 왠지 모를 공포감을 조성한다.
밤 늦은 시간 집에서 쿵 하는 소리에 놀란 서연은 소리의 근원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고 서연의 가족사진이 벽에서 떨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액자를 다시 벽에 걸기 위해 못질을 하지만 못은 허공에 박히다 바닥에 나뒹군다. 벽 너머에 공간이 있음을 직감한 서연은 굳이 그 시간에 벽을 부수고 어디론가 연결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지하 공간에서는 정체 모를 도구들이 버려져 있고 그 곳에서 일기장 하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갑자기 울리는 전화기.
"선희야 빨리 우리집으로 와줘. 엄마가 날 죽이려 해"
의문의 전화에 깜짝 놀란 서연은 찝찝하지만 잘 못 걸려온 전화로 치부한다. 하지만 다음 날에 또 걸려온 전화.
"너 왜 어제 우리집 안 왔어?" / "누구신데요?" / "선희 아니에요?"
전화기 너머 의문의 여자는 '영숙'이었다.
그들은 전화를 통해 서로가 다른 시간, 같은 공간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서연의 가족이 영숙네 집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하게 되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돌아가신 아빠의 목소리를 들은 서연을 눈물을 터뜨린다. 영숙은 가만히 생각하다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내가 너희 아빠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집에서 자신의 엄마에게 감금, 감시, 가혹행위(영화 스토리상 구마의 목적)를 당하던 영숙은 엄마가 한눈 판 사이, 집에서 탈출해 어린 서연의 집에 가서 가스 불 사고로 죽었어야 할 과거의 서연 아빠를 구한다. 그 시각 현재의 서연의 집은 어두컴컴하던 모습을 버리고 밝고 깨끗한 모습으로 변한다. 놀란 서연은 집 밖으로 나가고 온실 안에 있는 건강한 엄마(현재에서 뇌종양 투병)와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있는 아빠를 만나게 된다.
이 사실을 영숙에게 알리자, 영숙은 의미 심장한 말을 한다.
"진짜 이게 되네?"
건강한 부모님을 되찾은 서연은 그들과 함께 외출했다가 영숙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한다. 영숙은 전화를 준다고 해놓고 다시 전화를 주지 않은 서연에게 집착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서연은 영숙이 점점 더 이상해 지는 것이 두려워 현재의 영숙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보려 했으나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뉴스에서 그녀의 엄마에 의해 영숙이 살해당했음을 알게되고 서연은 바로 영숙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린다.
영숙은 자신을 죽이려는 엄마를 피해 오히려 자신이 엄마를 죽이게 된다. 왜 자신을 죽이려고 했냐는 질문에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죽어야 피바람이 불지 않아"
그 이후 엄마를 죽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딸기농장을 하던 선호를 죽이게 되고 영숙의 집을 사기위해 방문한 서연 아빠도 죽이게 된다. 또 한 번 아빠를 잃게 된 서연은 영숙을 죽이겠다고 다짐한다. 영숙이 살고 있는 시기에 일어난 사고 현장으로 영숙을 가게 만들어 죽이려 했으나 실패에 그친다. 이 사실에 분노한 영숙의 광기는 더욱 증폭되어 감금한 어린 서연에게 뜨거운 물을 부어 현재의 서연에게 공포심을 심어준다.
"내가 경찰에 잡히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를 빨리 찾아"
이렇게 과거를 통해 현재의 행복을 찾았던 서연은 결국 과거를 통해 그 행복을 다시금 빼앗기게 된다. 그리고 과거는 계속해서 현재의 발목을 잡는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잃을 지도 모르는 미래만 남은 것이다.
두 영화 모두 동일한 공간 속 이질적 시간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동경하던 시대로 돌아가 존경하던 인물들을 만나는 신비를 보여주었고, 콜은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사건으로 이어지는 미스터리에 대해 이야기 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내가 황금기라 생각했던 과거의 사람들을 현재인 그들의 삶을 비관했고, 오히려 더 과거인 시대를 동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콜은 내 현재를 아름답게 바꿔준 과거가 오히려 내 현재의 내 삶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현재의 비관적인 삶이 정말 비관적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재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약소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IF병'이라 부르고 싶은데, "내가 과거에 OO을 했었더라면", "내가 과거에 OO을 샀었더라면", "내가 과거에 OO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따위와 같은 가정만을 입에 달고 사는 병으로 과거에 잠식되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After병'으로 "돈 좀 벌고 여행가지", "딸 시집 보내고 배우지", "승진부터 하고 즐기지" 등 현재를 포기한 채 미래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을 버린 채 과거 속에 살거나, 오늘을 빚진 채 미래 속에 살 뿐이다. 두 영화가 어떤 주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틀 사이 본 두 편의 영화는 이런 메시지를 내게 던져 주었다.
주말 근무와 야근 사이를 힘겹게 오가며 살아왔던 지난 수 개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오늘도 또 한 번 다짐해 본다. 오늘은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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