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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Jan 12. 2023

아트플러그 연수 <2022 APY 프로젝트>

시선에서 빗겨난 것들에 대하여

아트플러그 연수 프로젝트 보고전 <2022 APY 프로젝트> 전시 리뷰  : 시선에서 빗겨난 것들에 대하여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혹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져 왔다. 기술의 발달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것의 영역으로 이끌었지만, 여전히 인간은 보이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살아간다.


2022년을 마무리하며 다녀온 전시 <2022 APY 프로젝트>는 위에서 언급한 양지에 드러나있는 존재가 아닌, 음지에서 저마다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며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눈 내린 아트플러그 연수 전경


2022년 연말에는 눈이 정말 많이 왔다. 자주 오기도 했고 많이 내리기도 했다. 눈으로 인해 출퇴근의 귀찮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눈(雪) 내린 날의 아트플러그 연수를 눈(目)으로 담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로써 아트플러그 연수에서 있었던 사계의 전시를 모두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아트플러그 연수의 사계


2022년 아트플러그 연수의 마지막 전시인 <2022 APY 프로젝트>는 2022. 12. 6. ~ 30.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1기 입주작가 중 프로젝트 분야에 선발된 두 팀, 윤결 작가와 임의그룹이 공간을 나누어 각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2022 APY 프로젝트 전시장 입구


 <2022 APY 프로젝트>는 2022 아트플러그 연수 1기 프로젝트 분야 작가들의 결과 보고 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연결성이 없는 듯 이어지는 두 프로젝트 팀의 다양한 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면, 윤결 작가의 <무릎은 노랗고 빨갛게 시리다>를 먼저 만날 수 있다. '무릎이 노랗다. 그리고 빨갛게 시리다'라는 것은 소위 말하는 '오십견'으로 대변 되는 중년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주류로 일컬어지는 클래식, 재즈, 뮤지컬, 오페라, 발레 등 '순수예술'의 영역이 아닌, 비주류로 일컬어지는 혹은 비주류라는 말조차도 사용하지 못하고 쉬쉬되어지는 각설이, 품바에 대한 이야기를 윤결 작가의 전시는 품고 있다.


윤결 <낯선 환호들 풉푸르_푸푸_또로르>                                


윤결 작가는 2019년부터 각설이, 품바에 대한 기록과 추적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아마 한국인이라면 시장 혹은 축제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이들을 만난 기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각설이 품바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그것 자체로 동그란 공연장이 만들어진다. 각설이 품바는 그 공간 안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한다. 그 대상은 내가 되기도 네가 되기도 하며 모든 사람이 공연의 주인공이 되기도 주변인이 되기도 한다. 너의 이야기고 나의 이야기며 우리의 이야기다. 


품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청년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중년이 되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각설이 품바를 보며 일종의 해방감, 일탈감을 느낀다. 나를 대신해 세상을 욕해주고, 아내 혹은 남편을 욕해주며, 마음속 응어리진 모든 것들을 시원하게 표출해 준다. 중년들이 팬클럽을 조직해 각설이 품바를 전국적으로 쫓아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결 작가는 '각설이 품바 - 중년' 간의 보이지 않는 관계성을 좇기 위해 그들의 유니버스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우리나라 1대 각설이 선생님들과 각설이패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삶을 추적하고, 팬덤을 직접 경험해 보기 위해 팬클럽에 가입해 활동을 하기도 한다. '좋은 관찰자이자 훌륭한 예술가로서' 그의 따스한 시선이 이번 전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결 작가의 연구, 리서치는 그의 출판물인 <낯선 환호들 풉푸르-푸푸_또로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은 2023년 초에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윤결 <오다장>


옆방으로 시선을 옮기면, <오다장>을 만날 수 있다. '오다장'은 허가를 받아 잠시 펼쳤다 사라지는 장을 말한다. 각설이 품바는 이처럼 '정기적'이지 않은 '임시적'인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펼친다. 정식적인 예술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비주류, 하위문화로 인식되는 그들의 삶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오다장>에는 각설이 품바를 상징하는 다양한 오브제들이 자리하고 있다. 원목의 테이블 위에는 볼링공이 올려져 있고 그 위에는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것들로 꾸며진 손톱이 붙어 있다. 한과 서러움이 가득한 내면과는 달리 가장 화려한 것으로 치장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인간에게 직업은 후천적으로 몸의 모습을 변형시키곤 한다. 발레리나들의 꺾인 발, 레슬러들의 접힌 귀 등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각설이 품바에게도 이러한 신체적 변형이 일어나는데, 그 부위는 발이다. 여성 각설이 품바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남성 각설이 품바에게도 이러한 현상이 보이는데 이는 '드랙(Drag) 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성별을 초월한 초월자로 무대에 오르는 게 각설이 품바다. 남성이 여성이 되고, 여성이 남성이 되기도 하며 뒤바뀐 성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며 무아지경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임의그룹 <유척추동물>


방으로 구성된 윤결 작가의 전시를 보고 넓은 전시실로 나오면 '임의그룹'의 <유척추동물>을 만날 수 있다. 이 작업은 인간의 신체에서 영감을 얻어 구성되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는 것은 <하트 Heart> 다. 자동차의 모터는 인간의 심장과 유사점이 많다. 심장 박동이 혈액을 몸 구석구석으로 보내어 각 신체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듯, 엔진 운동이 에너지를 기계의 각 부분으로 보내 작동되게끔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시장 중심부에 놓인 작품들의 작품명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 Eye>는 심장 보다 높은 지역, 실제 눈이 존재하는 위치에 있고, 천장과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발 모양을 하고 있는 작업은 실제 인간의 하체에 위치해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인간의 신체 모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트>는 스위치를 켜 실제 자동차 모터가 가동되는 모습을 관람객이 관찰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미니카를 가지고 놀며, 엔진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자동차 엔진은 먹물을 풀어 만든 검은빛으로 빛나는 수조 위에 떠 있는데, 엔진을 가동하며 아주 옅게 퍼지는 물의 파장을 볼 수 있다. 마치 심장 박동으로 혈액이 운반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커다란 스크린에는 <아이 Eye>가 재생되고 있다. 이 작품은 동물 본연의 본능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인간이 기술을 고도로 발전시키기 전, 동물은 '불', 즉 '밝은 것'을 쫓으며 생존의 확률을 높여 왔다. 인간이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전기를 발명하면서 모든 것은 달라졌다. 오히려 불을 향해 달려드는 것은 동물의 생존 확률을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어 버렸다. <아이>는 빛을 쫓아 움직이는 물고기, 빛에 뛰어드는 나방 등이 재생되고 있다.


생존을 위해 빛을 쫓게끔 진화되어 온 동물들은, 인간이 진화 대신 선택한 과학 기술의 발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선택한 이후, 인간은 신체적 변화가 아닌, 자유로워진 두 손을 활용한 도구의 제작과 기술의 발전을 진화로 삼아 왔다. 동물들 중 유일하게 척추를 올곧게 펴고 있는 유척추동물인 인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유척추동물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존 본능 그리고 끝없는 욕망을 상징하는 것이다.


전시 <유척추동물> 안에 구성되어 있는 작업들인 <하트 Heart>, <아이 Eye>, <브레인 Brain>, <스킨 머슬 셀 Skin Muscle Cell> 모두가 결국은 인간이 신체적 진화 대신 선택한 기술적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이 흐름을 따라 전시를 둘러보니 공상과학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엑스포의 과학관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APY 아카이브


전시 공간을 모두 둘러보고 마지막 공간인 '아카이브 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공간에는 '아트플러그 연수'가 2021년 개관한 이후로 개최된 전시 포스터와 입주작가 모집 포스터가 전시되고 있었고, 아트플러그 연수의 전경과 프로그램 사진들이 벽에 걸려있었다. 그리 오래된 예술창작공간이 아님에도 다채롭고 의미 있는 전시, 프로그램들이 이곳을 스쳐 지나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서는 아트플러그 연수의 홈페이지를 열람할 수 있었는데, 홈페이지 디자인 자체가 마음에 들었고 구성하고 있는 내용들도 좋았다. 입주작가들의 포트폴리오와 지난 전시, 프로그램들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는 기능도 좋았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에 인근 공원에 올라가니 송도가 바라다 보였다. 먼저 송도라는 이름을 썼던 이 지역이 '(구)송도'가 되고 아파트가 잔뜩 들어선 다리 건너의 저곳이 진짜 송도가 된 모습을 보며 이번 전시의 맥락인 '시선에서 빗겨난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때론 내가 나를 정의하는 것보다 타인 혹은 외부에 의해 내가 정의되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고 그들의 기호에 맞게 스스로를  포장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22 APY 프로젝트>는 시선에서 조금 빗겨나가더라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실히 지키고, 자신의 가치를 굳건히 주장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시를 보고 나왔을 때, 내 삶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 들었고 위로의 손길을 느꼈던 것 같다. 


영원히 녹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얼어붙은 눈도 이제 곧 녹아 물처럼 흐르게 되는 시기가 올 텐데, 그날엔 더더욱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2022년의 마지막 전시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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