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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Oct 25. 2022

2022 아트플러그 연수 입주작가 기획전

멀리서 보지만 자세히 보이는

2022 APY 입주작가 기획전

<Remapping Remapping Remapping : Time, Space, Memory>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잘 모르겠는데?"라는 반응을 할 수 있지만 시를 읊기 시작하면 모두가 "아~!"라는 반응을 보이는 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 <풀꽃>


나태주 시인이 이토록 자랑하고 싶었던 대상이 풀꽃이었던 것처럼, 나도 '나는 보고 왔노라' 자랑하고 싶은 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구)송도라 불리는 옥련동 일대는 '송도유원지'가 수도권의 대표적 피서지로 각광받던 시기, 호황을 누렸던 관광지였다. 현재도 그 시절의 영광을 대변하듯 유흥거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꽃게거리와 같은 먹거리도 여전히 성황 중이다.


조금은 번잡스럽고 왁자지껄한 곳을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가득한 공간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이곳이 바로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다. 시각예술가가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다양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이자, 인천시민과 연수구민에게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10월 22일(토)부터는 '2022 APY 입주작가 기획전'인 <Remapping Remapping Remapping : Time, Space, Memory>가 개최되고 있다. 전시는 다음 달인 11월 27일(일)까지 운영된다.



이번 전시는 '아트플러그 연수' 1기 입주작가들이 6월 초에 있었던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역 리서치 투어'를 통해 각자가 받은 영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연수구의 다양한 모습을 각자의 시선으로 리서치하고 재해석하여 관람객에게 제시하는 형태다.


전시의 포스터부터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칸딘스키'의 <점, 선, 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전시의 부제인 'Time, Space, Memory'가 '시간, 공간, 기억'으로 번역되고 나는 이것을 '점, 선, 면'으로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시간들은 넓게 산재되어 있다. 그 시간들을 모아보면 공통적인 공간이 발견된다. 그렇게 무수히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면 함께 공유되지만 이질적이기도 한 기억들이 만들어진다. 나는 이 과정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청학풀장, 청학동 느티나무, 문학산의 삼호현(사모지고개), 함박마을, 어촌계와 갯벌, 저어새, 송도유원지와 중고차 매매 단지 등 우리는 각자의 다양한 시간에서 발견되는 공간과 마주하고 서로의 기억을 이렇게 맞춰보고 저렇게도 맞춰보는 퍼즐게임을 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퍼즐의 '요(凹)'와 '철(凸)'이 맞아떨어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전시장 입구부터 무척이나 설레는 마음이 되어버린 나는 첫 번째 전시 공간으로 발을 옮겼다.




Ⅰ. <소리 없는 풍경> _ 이성경


이 글의 제목을 '멀리서 보지만, 자세히 보이는'이라고 지은 것은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님들이 사물을 관찰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 첫 번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성경 작가는 무언가에 비치는 장면, 무언가를 통해 바라보는 장면을 추적한다. 멀리서 보지만, 오히려 현미경을 대고 그 대상만 세밀하게 살피듯 눈에 자세히 들어오는 게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소리 없는 풍경 22-3>은 이성경 작가가 '지역 리서치 투어' 때 발견한 청학풀장은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아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진공 상태의 수영장이었다. 수영장에 대한 이미지는 실제를 완전히 옮겨온 것도 아닌, 그렇다고 완전히 상상한 것도 아닌 그 가운데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청학풀장은 인천 최초로 취식이 가능했던 여름철 피서지였다. 취식이 된다는 장점은 가족 단위 손님들이 방문하게끔 만들었고 내 또래 인천, 특히 연수구에서 자란 20~30대 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가득한 장소로 남아 있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왼쪽에 있는 작품에 눈이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갔다. 빨간색 글씨로 '다이'까지만 확실하게 쓰여 있고 나머지 글씨는 유추를 통해 알아내야 하는 게 재밌었는데, 나도 모르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다이소'였다.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고 내 경험에 따라 '다이' 다음에 따라올 가장 자연스러운 글자가 '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수영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다이소'라는 글자가 먼저 떠오른 것이 신기했다. 다른 이들은 가장 먼저 어떤 단어를 떠올리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TV에서 내가 다녀온 여행지가 나오면 "와! 나도 저기 가봤는데!"라고 외치게 된다. 내가 사는 동네가 나오면 "와! 저기 우리 동네 00인데, 신기하다!"라는 반응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성경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내 반응이 그랬다. "저기 내가 가본 00 같은데?"라고 속으로 말한 뒤, 휴대폰을 꺼내 내가 생각하는 장소를 검색해 봤다. 역시나 그곳이 맞았다. 시험 문제에서 정답을 맞힌 것 같이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 전시를 볼 이들을 위해 작품 속 장소가 어디인지 '스포일러' 하지 않겠다. 직접 공간을 방문해서 각자가 아는 경험에서 추론한 정답지를 제출해 보는 것도 큰 재미가 있을 것이다.





Ⅱ. <Arabesque> _ 정정호


두 번째 공간으로 걸음을 옮기면 가장 먼저 TV가 눈에 들어온다. 정정호 작가는 '멀리서 보지만, 자세히 보이는' 도구로 '사진기'를 사용한다. 특히, 이번 작업 <Arabesque>는 실제로 멀리서 바라본 '송도 중고차 매매 단지'의 모습을 담고 있고, 그럼에도 자세히 바라본 단지 안의 '외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송도유원지'의 화려했던 영광 뒤에 세워진 '중고차 매매 단지'는 우리나라 중고차 수출의 7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수출 역군'이자, 님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혐오 시설'이라는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인천광역시장, 연수구청장의 주요 공약으로 늘 등장하는 "송도 유원지를 주민들에게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아아아아!!"는 당선과 함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사라지고 있어 오랜 시간 지금의 모습, 아니 점점 커져가는 몸집을 확인할 수 있다.


정정호 작가는 송도유원지, 중고차 매매 단지, 정치적 이용 등 이 장소의 다양한 이슈보다 그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에 더욱 큰 관심을 갖고 관찰을 했다. 중고차 매매 단지 안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90%는 외국인이다. 오히려 한국인을 만나는 게 이 공간 안에서는 더 어려운 일이다.




작가는 단지 안을 관찰? 탐험? 하면서 카메라로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들이 인화되어 액자에 꽂혀 있고, TV를 통해 재생된다. 한국의 이름을 가진 것들을 외국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질적인 장면인데 그리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원래 그런 모습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기만 하다.


그 이유가 혹시, 중고차 매매 단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물류적 순환은 당연히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 특히 우리보다 경제적 지표가 낮은 국가의 외국인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못을 박아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정정호 작가가 이 작업을 진행하며 쓴 글이 더 내 마음을 울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정정호 작가의 글을 부분 발췌한 것이다. 아래 글을 소개하며, 감상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각자에게 맡기겠다.


송도 중고차 수출 단지 안을 돌아다니면 90%가 외국인이다. 아니 여긴 한국말이 간혹 보이는, 중동이라 하는 게 맞겠다. 외부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곳은 매연, 소음과 먼지를 유발하는, 땅값을 저하시키고, 심지어 위험해 보인다고 말하지만 이곳 역시도 누군가의 가족을 위해 열심히 생계를 이어가는 커뮤니티의 집단이었다. 때가 되면 알라신을 위해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고 오후 6시가 되면 붉은 노을을 뒤로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이곳 역시도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풍경이다. 지금 이곳의 장면은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이라도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이곳에 우리가 타던 낡은 자동차가 있었고, 그리고 그 안에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글. 정정호





Ⅲ. <두 시선의 사랑법> _ Save-a-블라블라(갈유라, 기슬기, 한수지)


이 전시의 큰 틀에서의 기획은 'Save-a-블라블라' 팀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6월 초 아트플러그 연수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역 리서치 투어>에 참가한 갈유라, 기슬기, 한수지 작가는 투어를 통해 받은 영감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다, 각자가 바라본 연수 지역의 곳곳이 같고 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지점을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시작한 결과, <두 시선의 사랑법>이라는 프로젝트가 탄생했고 <Remapping Remapping Remapping : Time, Space, Memory>라는 전시가 구성되었다.


<두 시선의 사랑법>은 3인 작가가 각자의 공통된 공간에서 다른 해석과 각자의 방식으로 리서치를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1시간 40분가량의 영상은 작가들이 8곳의 장소(청학풀장, 느티나무, 송도유원지(중고차 매매 단지), 함박마을, 어촌계/갯벌, 저어새, 삼호현(갑옷바위, 술바위), 능허대)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어떤 작업으로 시각화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 한 편의 길이와 맞먹는 러닝타임이었지만,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장소마다 작가들의 가치관이 어떤지, 또 이것을 예술적으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쫓아가다 보니, '나도 저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너무 재밌었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꼭 이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이즈음 되면 'Save-a-블라블라'는 그들의 작업을 어떤 식으로 구현해 냈을까 궁금해질 것이다. 앞서 이성경 작가는 '무언가에 비치는 혹은 무언가를 통과한 사물을', 정정호 작가는 '카메라 너머의 공간과 사람을' 보여주었기에 전시를 보는 나도 큰 두근거림이 있었다.


갈유라, 기슬기, 한수지 작가는 <지역 리서치 투어> 당시 남동유수지에서 '탐조경'으로 '저어새'를 관찰했던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망원경'으로 연수구의 8곳을 바라보는 전시를 구상해냈다. 이런 전시가 존재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처음 접하는 형식이라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밌는 건 못 참는 ENFP)



암막 커튼을 지나쳐 들어가면, 완전히 암전 된 공간이 나타난다. 낮은 조도의 조명이 비치고 있는 관조대를 향해 걸어가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 별천지와 마주하게 된다. 예전에 김해의 분성산성에서 어두운 숲길에서 만난 반딧불이가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다. 작가들은 각자의 작업을 스마트폰을 통해 재생되도록 했다. 우리는 그 작업을 멀리서 보지만, 자세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관조대의 끝의 왼쪽, 가운데, 오른쪽 총 3개의 망원경이 놓여 있다. 자리를 잡고 앞에 있는 스마트폰의 위치를 확인하고 망원경을 들어 눈에 가져다 댄다. 초점이 잘 안 맞는다면 망원경을 잡은 두 손을 안으로 오므리거나 밖으로 벌리면서 두 개의 원을 하나의 원으로 만들면 제대로 된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장면은 관람객들이 직접 보고 느껴야 감동이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한다. 영상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Ⅳ. 아카이브 공간


세 군데의 전시 공간을 보고 나오면 이번 전시의 아카이브 공간이자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인천에 대한 책, 자료 들을 열람할 수 있고 아트플러그 연수 입주작가의 포트폴리오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특별히 '당신의 연수구를 말해주세요'라는 취지로 내가 알고 있는 연수구를 소개할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책상에 있는 깃발(포스트잇+이쑤시개)에 내가 소개하고 싶은 연수구에 대한 내용을 적어서 벽에 떠 있는 연수구 지도에 꽂으면 되는데, 깃발은 사인펜과 스탬프 등을 활용해서 꾸미면 된다. 내가 갔을 때는 이미 다양한 깃발이 꽂혀져 있었는데, 다른 관람객들이 써 놓은 소개 글을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로 다가왔다.


나도 2018년 처음 연수구에 자리를 잡았던 청학동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왔다. 너무 바쁘게 지내 계절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모르던 시절, 청학동 느티나무가 계절을 알려주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벌써 햇수로 5년이나 이곳에서 지내게 될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었는데, 시간이 참 잘 흐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마지막으로 이 전시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시장 내에는 QR 코드가 붙어져 있다. 전시 전체에 대한 소개는 입구로 들어와서 처음 마주하는 벽에, 이성경 작가의 공간에는 작품 밑 바닥에, 나머지 작가들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 벽에 붙어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서 QR코드를 비추면 자동으로 '오디오 가이드' 페이지로 이동되고, 이어폰을 착용한 뒤 설명을 들으면 더욱 깊이 있는 전시를 경험할 수 있다.


QR 코드를 스캔하지 않아도 네이버에서 '아트플러그 연수'를 검색하면 오디오 클립이 상단에 뜨기 때문에 편하게 접속할 수도 있다. (링크 :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10057)


혹시 이어폰을 지참하지 못한 관람객은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이어폰'을 대여해서 관람할 수 있다. 다음 사람도 사용할 수 있도록 장부를 작성하고 반드시 반납하도록 하자!


2022 APY 입주작가 기획전 <Remapping Remapiing Remapping : Time, Space, Memory>는 연수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전시가 아닌, 동시대의 사회, 정치, 경제, 역사, 지리, 환경 등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전시다. 


이제는 무척이나 쌀쌀해진 날씨 가운데 실내에서 의미 있는 전시를 관람하고 사랑하는 친구, 연인,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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