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o Books _ 우고의 서재
스승의 날이다. 스승과 은사라는 단어는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낯설게만 느껴진다. 어린이집, 유치원의 일은 생각나지 않아 넘어가더라도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약 16년간의 학창 시절 동안 찾아갈 스승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무척이나 슬프게 느껴질 때가 많다.
어느 날 재미로 본 사주에서는 나를 이끌어줄 귀인이 내 인생에는 없다고 했다. 도리어 나는 평생 누군가의 귀인이 되어줄 사주라고 했다. 위로가 전혀 되지 않는 보살님의 말이 오히려 내게 큰 위로가 된 것은 왜였을까?
아마도 내 인생에서 스승, 은사라고 부를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어른’을 만나지 못했지만, 도리어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는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봉태규 배우의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는 제목부터 무척이나 와닿았던 것 같다. 그리고 표지의 아이 사진이 위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내 모습처럼 느껴져서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작가의 일상’, 두 번째는 ‘아버지라는 어른에 대한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에 대한 회상’, 세 번째는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서의 어른이 되어가는 작가의 현재와 미래’
나는 이 책에서 특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 부분은 ‘아버지와 작가’의 관계성이었다. 대부분의 ‘부자(父子 )’는 소통의 ‘부자(富者)’로 존재하기 어렵다. TK 출신인 나 역시 아버지와 내가 단 둘이 있는 시간·공간을 생각한다면 벌써 답답하고 어색한 기분이 앞선다.
IMF로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은 시절을 지날 때는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원망감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아빠는 왜 회사원이 아니어서 이렇게 우리집이 힘들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웃긴 건, 회사에 다니던 친구네 아버지들은 그 시절 권고사직을 당해 자영업을 시작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 당시에는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눈이 내게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는 정말 엄청난 인생을 살고 계셨다는 것을 안다. 주 7일을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삶을 사셨다. 휴무일은 없었다. 태풍이나 폭설이 아닌 눈과 비는 아버지에게 휴가의 사유가 되지 않았다.
두 아들의 고등학교 등굣길부터 아내의 출근길까지, 약 20년간 새벽과 아침 사이의 시간에 자동차 시동을 거셨다. 그렇다고 일찍 주무시는 것도 아니었다. 밤과 새벽 사이의 시간에는 사진 편집을 하셨다.
내 인생에 찾아 뵐 스승과 은사는 없지만, 그것 이상의 롤모델은 사실 존재한다. 우리 아버지다. 물론 미운 모습도 많고 저런 모습은 절대 닮지 말아야지 하지만, 아버지처럼 일에 진심이고 가족에게 헌신적인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살면서 아버지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두 형님을 먼저 보냈을 때도 아버지의 눈가에 눈물이 있었던 기억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바로 내가 군대 간 날, 논산에 나를 데려다주고 경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막연히 아버지는 형을 더 좋아한다는 막내의 질투 어린 하지만 사실에 가까운 추측을 가지고 살았는데, 형이 군대 갔을 때는 울지 않았던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는 울어줬다는 사실이 퍽이나 감동적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어른으로 살기란 참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가 아니라 ‘아버지처럼 살 수 없는 걸...’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요즘이다. 나는 아직 내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할 수 없는데 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에 나를 낳았으니, 그 삶의 무게를 전혀 가늠치도 못하겠다.
그럼에도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잠시 도망칠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고, 누군가에게는 배울 점이 있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존재가 되고 싶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곁에 있기만 해도 목표를 이뤄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동료가 되고 싶다.
나는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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