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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Jan 15. 2021

문화재단, 실패와 아픔의 이름

문화재단 입사 이야기 ②

문화재단, 실패와 아픔의 이름 - 문화재단 입사 이야기 ②


Ⅰ. 일을 하고 싶어 선택한 이방인의 길

 고향은 대한민국 지방 소도시였다. 사람들은 내 고향을 떠올리면 세대별로 신혼여행 - 수학여행 - 내일로 등을 떠올리며 저마다의 추억을 회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여행'으로 다가오는 곳이었기에 나를 향해 "너는 참 살기 좋은 도시에 사는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 과연 내 고향 경주가 살기 좋은 도시일까.


 내 친구 중 자영업(식당, 카페 등)을 하지 않는 친구들 중에서 경주에 남아 있는 친구는 거의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청년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존재하는 '청년 일자리' 중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지방으로 이전된 한수원 본사가 지역의 유일한 희망이었고, 이후에 생긴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성자과학연구단'이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의 공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산업은 '관광업'이고 그나마 우리가 취업할 수 있었던 곳은 운이 좋으면 '현대자동차 2차 공장' 무난하게는 '현대자동차 3차, 4차 공장'이었다. 그렇게 친구들은 경주의 한계를 인정하고 울산으로 포항으로 부산으로 대구로 구미로 거제로 창원으로 떠나갔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향에서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경주에서 문화예술 관련 사업들을 담당하며 큰 무대를 향한 갈증을 무수히 느꼈다. 그렇게 나는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목적지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이었다. 부산에서 경력을 이어나가며 경주에서 보다 더욱 다양한 사업을 만났다. 사실 부산이라는 도시의 매력과 할 수 있는 사업의 다양성은 나를 매료시켰다. 하지만 내 일상이 사라진 업무 강도와 스케줄은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고향이 아닌 곳에서 주말도 없이 일을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수도권으로 가는 게 내 미래를 위해 더 낫지 않을까?"


  2017년 7월 부산에서 경력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이직을 결심했고, 이직을 결심한 지 3개월이 지난 후에야 겨우 나는 부산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이방인으로 인천 연수구에서 살게 되었다.


고향을 떠나기 싫은 마음은 다들 같나 보다




Ⅱ. 문화재단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던 그 이름

 인천 연수구로 오기 전 나는 문화재단에 네 번 도전했다.


 첫 번째 기억은 2017년 스페인으로 한 달간의 여행을 떠나기 직전 원서를 냈던 '경주문화재단' 이었다. 당시 나는 첫 번째 직장에서의 안 좋은 기억들을 가득 끌어안은 채 퇴사를 한 상태였고 다시 내 인생을 돌아보기 위해 스페인행 티켓을 끊어 놓은 상태였다. 그 시기에 경주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신입직원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서류에 합격하면 면접이 스페인 여행 기간과 겹치게 되는 채용 일정이었다. 일을 계속해야 할까? 스페인 여행이라는 오래된 꿈을 이뤄야 할까? 행복한 고민을 이어가던 중 원서라도 써보자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자신감에서 나온 건지 모를 결정을 했다. 나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스페인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두 번째 기억은 인천시 부평문화재단이었다. 2018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지난겨울이었다. 부산에서의 기획사 경력까지 쌓은 후 첫 문화재단 도전이었기 때문에 나름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서류도 통과했고 필기시험을 치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문화재단 첫 필기시험 나는 그 어디서도 양질의 정보를 얻지 못했다. 필기시험은 객관식으로 일반상식, 문화예술 전공 문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공자가 아닌 내가 문화예술 전공과 관련된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리 없었다. 물론 NCS 책과 예술경영 책 등 열심히 공부했지만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두 번째 도전은 서류전형을 통과했다에 의의를 둬야 했다.


 세 번째 기억은 서울시 도봉문화재단 채용이었다. 도봉문화재단 역시 서류를 통과했다. 이번 필기시험은 객관식 문제가 아닌 논술전형이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논술 시험을 좋아했다. 내 장점을 어필할 수 있고 내가 추구하는 바를 설명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도봉문화재단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도봉구의 역사 콘텐츠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역사 콘텐츠에 문화사업이라는 옷을 입혔다. 이 과정이 논술시험을 통과하는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논술 문제가 3문제 정도 나왔던 것 같은데, <현재 도봉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기술하고 강점과 개선 방안 등을 논하시오>, <지원자가 도봉문화재단에 입사하면 운영하고 싶은 사업에 대해 대해 설명하고 이유를 서술하시오> 정도의 문제만 기억난다.


 필기전형을 통과한 나는 온라인을 통해 조사한 내용에 더해 도봉구를 직접 탐방하면서 문화콘텐츠를 더욱 구체화시켰다. 그리고 이를 통해 면접시험에 임했다. 면접시험은 다대다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면접관 4명과 지원자 2명, 내가 제일 싫어하는 면접 형태였다. 면접자 여럿이 한 번에 면접을 치르면 나만의 텐션으로 면접장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어렵다. 옆에 사람이 너무 뛰어나게 대답을 잘하면 주눅이 들고, 옆에 사람이 너무 못하면 나도 같이 안 좋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내 위주로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자기소개부터 잘해야 했다.


 자기소개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이런 형식으로 했다.

 "저는 문화재단 혹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민들을 만나는 사업을 운영했고 인력이 부족한 기관의 특성상 다양한 사업을 접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사업을 책임지고 A부터 Z까지 해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경험입니다. 저는 그런 경험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를 쌓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문화재단에 입사하여 더욱 넓은 범위에서의 사업을 운영하고 더욱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이어지는 질문은 필기시험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전공이 전혀 다른데 왜 문화재단에 지원하게 되었는지?>, <앞선 직장에서 어떤 사업들을 해봤는지?>, 그리고 내가 기다렸던 <입사해서 도봉구에서 해보고 싶은 사업을 기획한다면?>이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앞서 도봉구를 탐방하면서 '방학천' 주변에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모여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자연과 예술을 접목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방학천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마을 주도의 예술 축제'를 개최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도봉구에 있는 '평화문화진지'에서 통일과 관련된 주제로 '캠핑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도봉구 곳곳을 직접 두 발로 다니며 개최하는 프로그램의 도면들도 직접 머리에 그려봤는데 너무 기대되고 즐거운 시간이었음을 어필하기도 했다.


 나름 면접 질문에 대해 부족함 없이 대답했다고 생각하고 최종 합격 문자를 기다렸으나 결론적으로는 떨어졌다. 처음으로 합격을 기대했던 만큼 실망과 아픔이 컸다. 그리고 두려움이 커졌다.


 "내가 과연 문화재단에 입사할 수 있을까?"


 네 번째 도전은 서울시 중구문화재단이었다. '신당동 떡볶이'로 익숙한 신당동에 위치한 충무아트센터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당시 경주에서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이렇게 방문(직접) 제출해야 하는 채용은 너무 부담이 됐다. 모아둔 돈으로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데 서울에 한 번 다녀가면 꽤나 지출이 컸기 때문이다. 중구문화재단은 '충무아트센터'를 운영하고 있었고 사실 내게는 그리 어울리는 자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당시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기에 원서를 안 낼 수 없었다. 보통 이런 마음에 지원하게 되는 곳은 광탈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렇게 네 번의 문화재단 채용에서 떨어졌다. 더 이상 문화재단에 지원을 하지 않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①내가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비전공자에 경력도 부족해서다. ②백수 생활이 길어지는 것은 좋지 않고 나이를 생각하면 빨리 경력을 이어가야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자기 진단을 한 이후, 나는 조금 눈을 낮춰 이직을 준비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내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해왔던 업무를 계속 이어가 확실한 경력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가자" 그렇게 나는 문화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문화재단 외에도 도전은 계속되었다.




Ⅲ. 돌고 돌아 다시 문화원으로

 문화원으로 돌아갔지만 경주 '신라문화원'으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수도권에서 경력을 쌓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고 때마침 구직 사이트에 인천시 '연수문화원'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연수문화원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여타 문화원에 비해 운영하고 있는 사업의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연수문화원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연수문화원 입사도 쉽지 않았다. 필기시험이 없어서 서류합격 후 바로 최종면접을 볼 수 있었으나 내 첫 도전은 실패했다. 연수문화원이 운영하는 사업들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고 면접도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탈락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정말 이때는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내가 눈을 낮췄다고 생각했는데 내 실력이 이 수준인 것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안 지난 시점에 연수문화원 채용공고가 다시 한번 올라왔다. 내가 전에 지원했던 그 자리였다. 한 달도 안돼서 채용공고가 떴다는 점이 너무 찝찝했다. 얼마나 힘든 곳이길래 채용된 지 한 달만에 그만뒀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다. 나는 한 번 더 지원을 했고 똑같은 기관에 두 번째 면접을 보는 내 인생 첫 번째 순간을 마주했다. 첫 면접 때보다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고 면접관들도 내 진심과 열정을 좋게 봐주셨는지 나는 합격할 수 있었다.


 나중에 면접과 채용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첫 번째 면접에서 내가 간소한 차이로 2등이었다고 했다. 그 이유가 집이 멀어서 합격해도 오지 않을 것 같아서라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생각한다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면접에서도 최종 2명에 올랐고 고민하던 차에 두 번이나 면접을 봤다는 것은 이 기관에 오고 싶은 게 확실하다는 평을 받으며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문화원은 내게 '애증'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내 첫 직장이었기에 가장 열정을 불태웠고 무엇이든 하겠다고 덤벼들었었다. 하지만 내 노력이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인사고과에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세 번째 직장으로 다시 한번 문화원으로 돌아갔을 때, 이번만은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길 바랐다. 하지만 적은 인력을 갈아 넣어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생태계는 경주나 수도권이나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아마 같은 기관 다른 장소에서 면접 두 번 본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결국 또 한 번 벗어남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연수구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가운 소식이자 내게는 실질적 마지막 기회였다.


한 줄기 구원의 빛




 이어지는 <문화재단 입사 이야기 ③> 에서는 연수문화재단 채용공고에서부터 서류작성, 필기시험, 면접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다. <문화재단 입사 이야기>는 문화재단의 채용 시즌을 맞이해 문화재단 입사를 희망하는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며 쓰고 있다. 꾸준히 자신만의 길을 가다보면 언젠가는 목표로 했던 곳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쓰는 글을 통해 확인하시고 희망을 가지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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