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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Jan 13. 2021

무역학과 출신이 왜 문화재단에 지원했나요?

문화재단 입사 이야기 ①

Ⅰ. 무역학과 출신이 왜 문화재단에 지원했나요? - 문화재단 입사 이야기 ①


 첫 인턴부터 다섯 번째 직장에 입사한 지금까지 면접 때마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작으로 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무역학과를 나오셨는데 왜 문화예술 분야에 지원하게 되었나요?"


 이 질문은 문화원, 기획사, 광역 및 기초문화재단, 기타 문화재단 등 기관 불문 공통적으로 내게 주어지는 공식적인 첫 질문이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문화와 예술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디 면접이라는 게 MSG 없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던가. 마치 '천하제일 무술대회' 같은 이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와 '문화' 및 '예술'의 모든 접점을 끌어와 면접관들의 귀를 현혹시켜야만 했다.


 "저는 역사문화콘텐츠로 가득한 도시 '경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자연스레 지역축제와 지역 문화관광프로그램을 자주 접할 수 있었던 것에서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제 태도가 형성되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고등학교 조차도 '문화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런 답변을 시작으로 내가 왜 전공을 살리지 않고 문화예술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직군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면접관들을 이해시키고 나서야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사실 면접관들이 늘 처음에 물어봤던 이 질문이 내가 쌓아온 경력과 경험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 '스토리'를 풀어나가기에 도움이 되었다.


무역학과 출신이지만 문화예술이 하고 싶어


 Ⅱ. 나는 어떻게 문화재단에 입사할 수 있었을까?


 ①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서든 충성을 다해 경력을 쌓아보자

 신입에게 문화예술 관련 회사, 기관은 절대 문을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정규직 신입 공채는 '중고신인'을 선발하는 과정이다. 

신입은 대체 어디서 경력을 쌓아야 할까?


 위 짤은 대한민국 사회 전반을 대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특히 '문화재단' 입사에서 너무 강력하게 적용이 된다. 영업이익을 토대로 운영되는 일반 사기업들은 대학생활 동안의 성적, 경험, 자격증 등을 통해 사회 경력이 없는 '완전 신인'을 채용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문화재단의 경우 신입사원을 뽑지만 대부분의 경우, 타 기관에서 수평적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게 무슨 신입사원 공채냐고 욕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의 경쟁자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경력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문화재단 정규직 신입 공채의 경우, 중고신인을 선발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대체 중고신인 그들은 누구인가? 입사동기들 타 기관에 입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각자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00 문화재단 인턴', '00 문화재단 기간제 근로', '00 진흥원 육아 대체 근무', '00 공연장 어셔', '00 미술관 비정규직', '프리랜서' , '문화예술강사', '개인 사업 운영'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각자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나 역시도 '무역학과' 출신에 문화예술 관련 활동, 경험, 자격증이 전무했기에 어느 기관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때 결심했다. "더 이상 학교에서 학점을 위해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사회로 나가자"


 그래서 처음에 선택한 것이 인턴이었다. 첫 근무지는 경주 교촌마을 내에 있던 '(사)전통문화진흥원'이었고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사진 촬영과 원고 작성 능력을 어필하여 '홍보업무' 담당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약 3개월 간 '전통문화진흥원'에서 운영하는 공연 프로그램과 전통시장육성 프로그램을 서포트하며 어깨너머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상품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문화상품점 경력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을 염두에 두고 선택한 길이었지만 문화재단 입사를 위해서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았다. 문화상품점에서 근무하며 박물관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또한 문화상품점의 굿즈들이 개발 및 출시되는 과정을 알 수 있었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되는 유통되는 과정을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에 어떤 굿즈가 경쟁력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재단에서도 축제 관련하여 굿즈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요즘 트렌드가 각 단위 사업에서도 굿즈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다 보니 분명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좌) 사단법인 전통문화진흥원 천연염색 체험 프로그램 / (우)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상품점


 ② 문화재단행 직항을 탈 수 없다면, 타 기관을 경유해서 목적지로 향하자.

 경주문화재단 신입사원 공개채용에 입사원서를 넣었다. 서류에서 광탈했다. 위의 두 가지 짧은 경력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위의 경력으로는 서류 평가위원들이 내 서류에서 긴 시간을 머물게 할 만큼 매력적이지 않았음을 안다. 그럼에도 속이 쓰렸다. 서류 평가위원의 눈에 띄는 경력 몇 줄을 만드는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줄은 그땐 알지 못했다.


 내 첫 경력의 한 줄은 '(사)신라문화원'에서 시작되었다. 다행히 앞선 인턴과 아르바이트 경력이 신라문화원에서는 제법 어필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사무국에 소속되어 1년 6개월을 근무했다. 근무하는 동안 정말 다양한 업무를 맡았다. 축제, 교육, 탐방, 연수, 관광, 공연 등 안 해본 사업이 거의 없었다. 막상 근무를 할 때는 한 명에게 맡겨지는 과중한 업무와 휴일 없이 돌아가는 스케줄에 매우 자괴감이 느껴졌었지만 돌아보니 못 할 일은 없게 해 준 기관이었다. 참 고오마압다아. 


(사)신라문화원 재직 당시 '2015 문화유산 방문교육 전국발표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경력의 두 번째 줄은 부산의 '(주)티플러스'에서 쓰였다. 기획사이자 대행사인 티플러스는 문화예술행사 모든 것을 하는 업체였다. 신라문화원은 그래도 전통문화와 역사 위주의 사업을 운영했던 반면, 티플러스는 말 그래도 '무엇이든 해드립니다' 느낌의 업체였다. 부산에서의 8개월은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철학'과 일만 하다가 죽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다. 입사 후 두 달을 제외하고는 반년 동안 주말에 쉬어 본 게 합쳐서 4일도 되지 않았다. '월화수목금금금 월화수목금금금'의 연속이었다. 


 티플러스에서는 정말 경험해 볼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안 좋은 의미에서 신라문화원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축제, 교육, 탐방, 연수, 관광, 공연에 이어 전시, 박람회, 체육대회, 걷기 대회, 일출행사, 카운트다운 행사, 개관행사 등 정말 모든 것을 다 맛보고 도저히 이렇게 살 자신이 없어서 퇴사를 하게 되었다. 내게 더욱 못 할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회사였다. 정말 고오마압다아.


2018 제주 신화월드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


 경력의 세 번째 줄은 수도권은 다르겠지라는 믿음으로 상경을 시도해서 얻어냈다. 서울을 목표로 시작했으나 최종 정착지는 인천 연수구였다. 다시 한번 문화원과 연이 닿아 근무를 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문화원 성골로 인정받아도 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문화사업팀'으로 내 업무가 어떠한 범주 안에 들어갔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두 번의 직장생활 덕분에 예전만큼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었다. 다른 형태의 업무도 기본과 과정은 똑같고 콘텐츠와 만나는 사람만 다를 뿐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연수문화원에서 1년 8개월을 근무했다. 

 

연수문화원에서 담당했었던 왼쪽부터 '백제사신길 도보투어', '어르신문화프로그램', '연수시티투어'


 ③ 경력도 하나의 결이 필요하다

 세 번의 경력을 되돌아보니 내가 해왔고 잘할 수 있는 일은 '문화사업' 업무였다. 문화사업이라 함은 말 그대로 문화예술 분야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범주다. 그중에서도 공연과 전시, 축제 등을 통해 구민들과 직접 만나는 일이 나에게 있어서 경력의 하나의 결이 된 셈이었다.


 내가 기초문화재단에 입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재단에 입사해서 어떤 팀에 배치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 부서의 일에 대한 강점을 어필한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류를 평가하는 위원들은 수많은, 심지어 비슷한 원서를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들의 기억에 남는 게 어떤 원서일까. "저는 모든 업무를 무난하게 합니다"와 "저는 이 분야에서 특별한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에 어떤 원서를 '서류전형 합격' 쪽으로 옮겨 놓을까? 나는 분명 후자라고 생각한다.


 ④ 입사하고자 하는 지역문화재단에 대해 아는 것 이상으로 근무하는 지역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연수문화원에서 2년 조금 안 되는 기간을 근무했던 게 나로서는 지역에 신생 문화재단이 생겼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연수구라는 지역의 특성을 따로 공부하고 연수구의 문화예술 현황에 대해서 따로 조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고 연수문화원에서 근무하면서 연수구 문화예술 사업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고 있었고 또 기타 기관들이 주최하는 행사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이런 점들은 '필기시험'과 '면접'에서 큰 힘을 발휘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이어지는 '문화재단 입사 이야기 ②'에서 이어가도록 하겠다.


 아무튼 지역문화재단의 특성상(물론 광역문화재단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역문화재단이 훨씬 더 지역성을 많이 띄기 때문) 지역 현황을 파악하고 업무를 하는 것과 제로베이스에서 업무를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연수구 송도는 아파트가 주거형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지역인데 전통적인 마을 축제를 기획한다던가, 연수구 함박마을은 고려인들이 모여사는 동네인데 우리나라 어린이 대상의 공연을 기획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내가 기획한 사업이 이미 우리 지역 어디선가 운영되고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섭외한 공연팀이 내일 당장 인근 기관에서 공연을 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지역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없고, 지역에 문화예술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필기시험'이나 '면접'에서 통과하기 쉽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모든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업들에 대해 서술하면 무난한 점수를 받겠지만, 무난한 점수를 받아서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천하제일 무술대회'같은 문화재단 채용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입사하고자 하는 문화재단의 비전과 목표를 이해하는 것에 더해 근무하려 하는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가 어우러진다면 우리는 미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Ⅲ. 결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전공자도 충분히 문화재단에 입사할 수 있다. 우리 재단에도 문화예술 분야와는 관련이 적은 경영학과, 건축과, 러시아어학과, 사학과, 사회학과 등의 전공 분야에서 입사한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통은 다 나와 같은 길을 걸었다. 여러 기관에서의 경험과 경력을 통해 문화재단에 입사한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문화재단에서의 인턴, 기간제, 비정규직 등의 경력을 통해 정규직으로 입사한 케이스가 있다. 단번에 문화재단 신입 정규직으로 입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문화예술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이 아무래도 분야 관련 지식이 많아 필기시험을 통과하기 수월하다는 것, 주변에 문화재단 입사에 대한 정보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는 유리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전공자 역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구조 자체가 이미 완전한 신인은 사라져 가고 있고 '중고 신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경험과 경력 없이는 문화재단에 입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번 글에서는 비전공자인 내가 문화재단에 입사하기 위해 어떠한 준비를 해왔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였다면, 이어지는 글에서는 내가 입사한 기초문화재단의 '채용 과정 전체'를 다루며 어려웠던 점과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이야기하려 한다.


내가 이번 글을 기획한 이유는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문화재단 입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실패를 맛보았던 '과거의 나' 같은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아무쪼록 이 글이 누군가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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