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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초록 Oct 12. 2023

너는 두 줄로 나타났지 - 1

수태고지, 그 고요하고 숭고한 순간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루카 복음 1:26-38 중






종종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던 첫 순간을 떠올려 본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는 약 반년 전부터 아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때의 나는 ‘의학적 노산’이 간당간당하던, 썩 그리 적은 나이도 아니었다. 큰 일을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남편의 일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아기를 낳아 키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시기였다.


아기를 가지기로 결심했다고 하자, 주변의 임신 선배들은 과학적. 비과학적 따질 것 없이 온갖 조언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몸을 따뜻하게 해라, 물을 많이 마셔라, 운동을 해라, 시도 직후 물구나무를 서라, 누워서 쉬어라, 마음을 편히 먹어라, 예쁜 것만 보아라 등등. 이러한 ‘비법’들이 실제로 유의미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평온하게 지내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프라 안젤리코의 회화 작품 하나를 스마트폰 사진첩에 저장하고 수시로 작품을 감상하곤 했다.


그림 1.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40–1445, 산 마르코 수도원, 피렌체


작품의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잔꽃이 소담히 핀 정원을 건너 흰 열주가 조용히 늘어선 회랑으로 앵무새 날개를 단 천사가 막 들어선 참이다. 군청색 가운을 두르고 홀로 앉아 있던 여자는, 두려움과 의심이 뒤섞인 표정으로 얼굴로 천사를 맞이한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어 천사는 한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슴 앞에 포개며 하늘에서 가져온 소식을 전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성 경험조차 없던 어린 소녀 마리아는 가슴 앞에 두 손을 포개고는 몸을 살짝 숙인다.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천사의 등 뒤에서 햇살이 부드럽게 떨어져 방 안을 그득 채우고, 고요하게 반짝이며 그 순간에 머문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가 신의 아들을 잉태할 것임을 예고한 이 순간을 ‘수태고지’, 혹은 ‘성모영보’라고 부른다. 기독교 교회사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인 만큼 미술사에서 가장 즐겨 그려지던 주제였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 관심이 없어도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한 화가들은 모두 한 번씩은 이 작품을 다루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태고지를 묘사한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나는 프라 안젤리코의 이 그림을 가장 좋아했다. 나는 2세를 준비한답시고 호들갑 떨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근심에 빠져 있거나 패닉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엇 하나 과장되거나 과잉되지 않고, 부드러운 색감과 절제된 장식이 차분하고 엄숙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작품이 딱 적절했다. 나는 임신을 준비하는 내내 이 작품을 보면서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도했다. 내 뱃속에 자리 잡을 아기가 비록 예수 그리스도처럼 신비롭고 거룩한 존재는 아니지만, 내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빛나고 귀한 존재가 될 테니까.


재미있는 것은, 임신 출산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15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들 역시 이 작품을 보며 자신들의 눈앞에 이 순간이 찾아오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산 마르코 수도원


  이 작품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 기숙사 복도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로, 1437년 경 코시모 데 메디치의 의뢰로 제작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권이 바뀌면 통치자들은 꼭 상징적인 건축물을 세우거나 갈아엎고나 하는데, 15세기 피렌체를 통치했던 메디치 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정쟁에서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되었던 메디치 가의 장남 코시모는 1434년 복권하면서 무지막지한 자본을 쏟아 넣어 피렌체 곳곳에 건축 사업을 벌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이 산 마르코 수도원이다.


12세기에 처음 지어진 산 마르코 수도원은 세기를 걸쳐 몇 번 주인이 바뀌었는데, 코시모가 복권할 당시에는 실베스테르 회 수도사들이 이곳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의 평판이 썩 좋지 않았던 터라, 코시모는 교황 에우제니오 4세에게 입김을 넣어 실베스테르 수도사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자신과 종교적 신념이 일치했던 도미니코 회를 정착시켰다. 자신이 통치하는 도시 중심부 노른자위 같은 땅에 자리 잡은 수도원이니 아무 수도회나 기거시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하튼 새 입주민이 들어왔으니 이제 리모델링이 필요하겠는데, 코지모 데 메디치는 이 수도원의 건축 사업에 진심이었다. 그는 상당한 금액의 사비-메디치 은행 법카가 아니라!-를 들여 대규모 증축을 단행하면서 전도유망한 아티스트들에게 작업을 의뢰하였다. 건축은 미켈로초 디 바르톨로메오 미켈로치가, 인테리어 벽화는 도미니코 수도사 출신의 화가 귀도 디 피에트로가 맡았는데, 이 화가의 별명이 바로 천사 같은 형제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다.


성품이 천사 같다는 뜻인지 그의 존잘력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뜻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수도사 출신인 만큼 그는 작품에 남다른 영성을 쏟아부었다. 성당의 중앙 제단화를 비롯하여 회랑, 강당, 수도사의 방 등 50점이 넘는 벽화 작품들이 프라 안젤리코의 감독 하에 제작되었으며, 덕분에 특유의 고요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수도원의 절제된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공간 전체에 평화로운 경건함이 감돈다.


현재 산 마르코 수도원의 일부는 미술관으로 바뀌어 프라 안젤리코의 벽화 또한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수도원 기숙사 2층 복도 벽에 그려진 작품, 바로 위에서 설명한 <수태고지>다.


그림 2. 산 마르코 수도원 회랑, 피렌체


재미있는 것은 그림 속의 공간이 산 마르코 수도원 내부의 회랑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흰 석회 벽, 이오니아 양식의 주두, 아치를 가로질러 벽을 지탱하는 검은 철골 구조물과 작은 정원 등, <수태고지>에 묘사된 건물에는 산 마르코 수도원 회랑의 건축적 특징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작품 속에 묘사된 공간과 관람자가 있는 실제의 공간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관람자를 작품 속으로 쉽게 끌어들인다.


수도원의 회랑은 수도사들이 쉬거나 기도를 하며 하루 일과를 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이 익숙한 공간을 돌며 하루 일과를 마친 수도사들은 회랑과 연결된 계단을 통해 기숙사 방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 벽화는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위치에 그려져 있다. 마치 방금 지나온 공간에 '수태고지'가 재현되는 듯 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프라 안젤리코가 작품 외부에서 빌려온 것은 배경이 되는 건축물뿐만이 아니다. 현재는 수도원 기숙사 내부가 많이 바뀌어 사방으로 빛이 들어오지만, 코지모 데 메디치의 후원 하에 처음 재건되었을 때 광원은 왼쪽 복도 끝의 창문 하나였다. 갑자기 채광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햇빛'은 전통적으로 수태고지를 묘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풍성한 백발 수염을 휘날리는 강건한 노인의 모습으로 하느님이 직접 등장하는 작품도 있기야 하지만, 당대의 많은 화가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천사의 뒤편에서 들어오는 광선으로 나타내는 쪽을 선호했다.


프라 안젤리코 역시 비슷한 시기 제작한 다른 '수태고지'에서는 하늘에서 쏘아지는 금빛 광선으로 성부의 존재를 암시한다. 그러나 여기, 산 마르코 수태고지에서 프라 안젤리코는 흰색과 노란색의 물감 대신, 작품 외부에 실존하는 진짜 빛을 작품 내부로 끌어들인다. 어두운 복도 왼쪽 창에서 빗겨 들어온 햇살은 작품에 은은하게 표현된 명암과 합쳐져 이미지를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림 3.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c. 1435,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이렇게 프라 안젤리코는 화면 밖의 요소를 적절하게 이용하여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에 잉태되는 이 순간을 현실 세계에, 그것도 관람자에게 가장 익숙한 장소에 재현한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갈 때마다 수도사들은 이 작품을 보며 생각할 것이다. 우리 수도원의 작은 안뜰에 성모 마리아와 가브리엘 대천사가 방문하였구나. 가톨릭 교회의 시작이 되는 거룩하고 신비로운 사건이 지금 이 순간 바로 우리 수도원에서, 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구나.


그리고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을 그린 사람은 당대 최고의 화가 중 하나인 프라 안젤리코이며, 이 작품을 의뢰하고 후원한 사람은 피렌체의 통치자이자 유럽 최고의 재력가 코시모 데 메디치다. 도미니코 회에 들어오길 잘했어. 애사심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다른 게 또 있나, 이런 게 바로 영성적 복지가 아닐까 싶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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