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안걸리는 여름감기

아이가 아픈건 도무지 단련이 되지 않는 일.

by 자잘한기쁨

유가 열이 났다.

후끈후끈하더니 체온은 밤새 40도를 찍었고, 자는 건지 조는 건지 모르게 보초를 서가며 해열제를 시간마다 챙겼다.

그렇게 이틀을 아프고 나니 얼굴에 열꽃이 피고, 잘 지나가 가나 했던 목감기는 온이에게 옮겨주었다.

온이 역시 이틀을 고열에 고생하더니 열꽃이 두 뺨을 장식하고서야 지나갔다.


아이들이 번갈아 가면서 아프면 정신이 없고, 무섭기까지 하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걱정이 짙은 목소리로 이제 막 돌 지난 아기가 갑자기 토하고 응가가 묽다고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조마조마했던 날들을 지나왔다고 친구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응급상황이라고 생각될 때 지금처럼 내게 전화하지 말고 119 의료상담을 먼저 받으라고 했다. 야박하게 들렸겠지만 아이를 덜 힘들게 하는 것은 이 방법이라는 걸 나는 온몸으로 부딪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를 안고 구급차를 타는 절박한 마음도, 무슨 정신으로 운전해서 응급실을 갔는지 기억이 안 날 만큼 두려웠던 마음도, 정말 하나 같이 무섭고 두려웠던 순간들을 지나온 지금도 아이가 아픈 건 도무지 단련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나마 이제는 조금 컸다고 짧게 아프고 지나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찰나, 온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학기 초 등원차량에 오기 전 꾀가 난 온이는 엄마를 여러 번 시험에 들게 했었다.


“엄마 머리가 아파서 유치원 못 갈 거 같아요. 소아과 가야 될 거 같아요”


“거짓말로 아픈 거야? 진짜로 아픈 거야?”


“진짜예요”


“그런데 만약에 온이가 거짓말을 하는 거면 다음번에 엄마가 온이 말을 믿을 수 없을 거 같아. 정말로 아플 때 엄마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사실 안 아파요.”


“유치원 안 가고 싶어서 그랬어?.”


“네”


“선생님이 갑자기 온이가 안 오면 걱정하실 거야. 그러니까 대신 씩씩하게 가고 하원을 일찍 하자. 어때?”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등원차량에 올랐었다.




그런데 오늘 하원 길에 머리가 아프다기에 이 녀석이 또 꾀가 난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몇 번을 되물었다.


“온아, 온이가 정말로 머리가 아픈 거야? 거짓말로 아픈 거야?”


“진짜로 아파요”


“그래? 그럼 우리 집에 가서 좀 쉬자.”


차를 돌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유는 이미 잠이 들었고, 온이는 눈이 가물가물 감기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었어도 이럴 때는 고민이 된다. 이제 막 잠이 든 녀석을 깨워서 걸어가라고 하자니 단잠을 깨울 거 같고, 그렇다고 온이와 유가 잠이 들면 한 명씩 집에 데려다 놓는 것도 걱정되고, 결국 아픈 온이에게 부탁했다.


“온아, 3분이면 집에 도착하는데 온이가 조금만 참아줄 수 있을까? 유가 지금 잠이 들었잖아 그런데 깨우면 다시 자기 힘들 거 같아서.. 대신에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온이 꼭 안아서 잘 수 있게 도와줄게”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머리가 아프다던 온이에게 밀려드는 졸음을 참으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4살 때까지는 차에 아기띠와 1인용 휴대용 유모차를 두었었다. 그래서 한 명은 유모차에 태우고, 또 한 명은 아기띠로 안아서 가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은 휴대용 유모차 한 대가 차에 있어도 태우고, 업고 갈 여력이 못된다. 안으면 발이 엄마 정강이까지 내려오는 온이와 유의 무게를 이겨낼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 온이는 엄마 배 위에서 엄마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자고 일어났는데도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우리 그럼 오늘 집에서 쉬고 레고 수업은 가지 말까?”


“아니 갈 건데요”


온이는 미지근하고 유는 단호했다.

수업 시작 전 유는 들어가겠다 하고 온이는 안 가겠다고 했다. 결국 수업은 유만 들여보내고 온이와 차 속에서 쉬고 있는데 온이가 울었다.


“엄마 머리가 너무 아파서 힘들어요. 병원 가야겠어요.”


레고 수업을 하겠다고 강의실에 들어간 유를 데리고 나올 수가 없었고, 수업이 끝나기 전에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온이를 안고 부랴부랴 소아과로 갔다.

오늘따라 신호라는 신호는 다 받고, 병원 대기는 길고, 온이는 아프다고 울고 시간이 지날수록 유를 어떡하나 싶은 걱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이 불안했다.

겨우 두통약을 처방받고 약국에 처방전을 맡겼다. 그리고 약이 나오기 전 온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다.


“엄마 응가 나오게 앉아 있어야겠어요.”


“응 그래 엄마가 손 잡아줄게 응가 싸.”


변기에 앉은 온이와 마주 보고 손을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온이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온이는 토사물을 쏟아내고, 나는 놀라서 손으로 받았다. 그런데 점심때 먹었던 음식까지 모두 게워내느라 온이의 바지 신발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치마와 신발에도 다 쏟아내었다.

온이는 적잖이 당황한 눈빛이었다.


“온아, 속은 좀 어때? 또 토가 나올 거 같으면 해. 엄마가 전부 다 치울게 걱정하지 마. 그래도 다행이다. 온이 팬티에는 안 묻어서. 엄마가 온이 안고 차에 가서 담요로 덮어줄게. 엄마 조금만 기다려줘.”


바닥에 쏟아진 토사물을 전부 치우고 온이의 신발에 묻은 토사물을 휴지로 닦고 물로 헹궜다.

온이의 다리도 닦고 바지는 비닐봉지에 넣었다.

진료를 다시 보고 위장약까지 받아서 약을 먹이고 온이를 안아 카시트에 앉히고 담요를 덮어 유에게 갔다.


예상치 못한 일로 늦어졌고, 레고 수업이 끝나고도 20분이 지나서야 유에게 도착했다.

다행히 같이 수업 듣는 친구 엄마가 유를 맡아주었다. 얼마나 고마웠던지..

지금까지 유를 혼자 둔 적도 누군가에게 내 아이를 부탁한 적도 한 번도 없었는데 진땀이 다 났다.

유는 엄마가 없는 동안에도 놀라서 울거나 보채지 않고 상황을 이해한 듯 기다리고 있었다.

유는 온이를 보자마자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많이 아팠어? 너 아프다고 해서 내가 엄청 걱정했어. 지금도 아파?”


유도 혼자 남겨져서 엄마를 기다린 적은 처음이라 놀랐을 텐데 온이를 먼저 걱정해주는 유의 마음이 예쁘고 고마워서 엄마 마음은 또 저릿해졌다.

여전히 두통 때문에 힘들어하던 온이가 담요 위에다 또다시 구토를 쏟아냈다.

엄마 얼굴을 빤히 보던 온이가 말했다.


“엄마 얼굴이 진짜 빨개요”


“그래? 이상해?”


“그런 건 아니에요”


“엄마는 온이만 안 아프면 돼. 온이랑 유 대신 엄마가 전부 다 아플 테니까 온이랑 유는 절대 아프지 마 알았지? 이제 싹 낫자~”


그런데 갑자기 온이가 울먹거리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온아 왜? 머리가 더 아파? 약 먹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엄마가 지켜줄게 걱정하지 마 온아.”


“그게 아니고.. 그러면 엄마가 아프잖아 그래서 너무 슬퍼”


너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저 엄마는 네가 안 아팠으면 하는 마음에 했던 말이었는데, 엄마가 아프면 슬프다는 너의 눈물에 엄마도 울컥 눈물이 났다.


아플 때 특히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의 마음도, 한 녀석을 안고 있으면 그 모습을 보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아이의 마음도 알 것 같아서 누구 하나라도 아프면 마음이 힘들다.

오늘도 역시 안고만 있어달라는 온이와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 배고프다는 유 사이에서 다 닳아서 버렸던 아기띠가, 물려준 포대기가 두고두고 아쉬웠다.


아이들이 세 살 때까지 한 명은 뒤로 업고, 한 명은 앞으로 안았다. 낮잠을 잘 때도 밤잠을 잘 때도 아플 때도. 그렇게 몸 혹사시키는 거 아니라고 나중에 골병든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지만 엄마 품을 파고드는 아이들을 내려놓는 건 아무래도 나는 못할 일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최선의 방법을 결정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내가 못할 일이 아니고 버티기만 하면 되는 가장 쉬운 거였다.

그렇게 3년을 꼬박 쓴 아기 띠 두 개는 누구에게도 물려줄 수 없을 정도로 다 닳아 있었다. 오늘은 다 닳아서 버렸던 그 아기띠마저도 생각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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