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끝나고 써보는 방학 일기
나의 일주일은 아이들이 유치원 가는 날과 일주일에 두 번 수영장에서 오리발 하는 날과 아닌 날, 그리고 주말 정도로 간단해졌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오늘이 며칠이냐 물어오면 당연하듯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데 7월이 시작되자마자 유치원 가정통신문에서는 주 단위로 계속해서 여름방학을 예고했다.
잊고 지낸 시간에 대한 강렬한 압박. 하원 후에 마주하는 시간보다 곱절로 늘어나는 시간들을 무엇으로 채울까 아니 무슨 재주로 버텨낼까 싶은 생각에 오랜만에 긴장감이 밀려왔다.
공식적인 3주 남짓한 방학을 함께할 것인지, 종일반 이틀의 방학을 공식화할 것인지 고민하는 동안 월화수목금토일이 몇 번 지났고, 미적거리느라 준비나 계획은 하지도 못한 채 방학은 닥쳐왔다.
방학이 되고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삼시 세 끼를 차려내는 것이었다.
남들은 혼자 있을 때 격식을 갖춰 먹고, 제대로 먹으려 한다는데 나는 게을러서 그런지 나 먹자고 음식을 만든 적이 없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삼시 세 끼에 간식은 준비하면서도 어느 틈에도 나의 식사는 없다. 준비하느라 한 번 지치고, 먹이느라 두 번 지치고, 치우느라 세 번 지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먹기보다 넋 놓고 앉아 있는 편이 더 좋아서,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나서 맘 편하게 먹는 야식이 주는 행복감을 놓칠 수 없어서.. (아.. 오늘도 뱃살이 늘었다.)
이렇다 보니 내가 하는 요리는 이유식을 시작으로 다섯 살 입맛에 맞는 음식에 특화되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맛깔난 어른 음식에는 재주가 없고, 없던 입맛도 찾아오고 싶을 때는 바깥 음식만 한 것도 없다.
가만있어도 짜증이 솟구치고 숨 막히는 습식 사우나 같은 날씨에, 아침 준비하고 먹이고 돌아서면 간식시간, 간식 주고 엉덩이 좀 붙이려 하면 점심시간, 점심 먹이고 좀 쉬어볼까 하면 오후 간식과 저녁 준비가 나만 두려웠을까.. 더군다나 온이와 유가 먹깨비였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과 달리, 달라도 너무 다른 식성에 입까지 짧은 아이들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날 서는 모습이 너무 뻔해서 걱정에 걱정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런데 걱정은 마음만 무거운 것일 뿐, 막상 방학이 시작되고 보니 이미 다섯 살 이전까지는 힘든 게 뭔지도 모르고 버텨온 시간들이었는데, 그 새 얼마나 몸이 편해졌으면 이런 걸 겁을 냈을까 싶기도 했다.
(겁쟁이는 너희가 아니라, 엄마다.. 그렇지?)
특별한 계획 없이 마주한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보자는 의미에서 치과, 안과 검진부터 하기로 했다.
영유아 검진을 하면서 온이와 유의 간단한 신체계측이나 시력, 치아상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어찌 됐건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지금 찝찝했던 부분을 먼저 해결하고 싶었다.
아기 때부터 젖을 물고 자던 유는 커서는 음식을 입안에 물고 있는 최악의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때문에 이는 많이 삭아있고, 엄마는 걱정이 큰데 반해 유는 치과 검진 때마다 치료를 하지 않으니 엄마가 겁준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동안 치료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충치가 깊지는 않지만 여럿 있고, 이는 삭아 있으니 갈 때마다 지켜보자 한 것. 그런데 이번 검진에서 6개월 전보다 삭은 것도 충치도 더 많이 진행되어 있었고, 온이 역시 어금니 사이사이에 있던 충치가 조금 더 깊어져 있었다.
이미 몇 번의 검진을 통해 익히 알고 있던 부분이라 신경을 썼음에도 충치치료를 피할 수 없었다.
매일 치실을 거른 엄마 탓, 외출하다 잠들어 들어오면 양치질을 건너뛴 엄마 탓. 결과적으로 유와 온이와 치아는 관리를 해주지 않은 엄마 탓이 가장 컸다.
치료 시 웃음 가스나, 수면치료를 전제로 하자고 했지만 나는 짧은 시간도 불안하고 싶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서 치료를 받아볼 참이었는데 웬걸 선생님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온이와 유는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천장에서 아래로 비추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누워 이어폰을 끼고 엄마 손을 잡았다. 온이와 유가 치과에 도착해서 흔들어 깨워야 할 정도로 진한 낮잠을 잔 터라 잠투정이 이어질까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던 선생님의 걱정을, 없던 걱정도 만들어서 하는 엄마의 쓸데없는 걱정까지도 여지없이 날려버렸다.
충치치료를 가뿐하게 마친 온이는 치과 치료까지 잘하는고 나서는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나 치료도 잘 받으니까 여섯 살 된 거예요?"
"하나도 안 무서운데요? 그리고 하나도 안 아팠어요!"
온이와 유는 그 무섭다는 충치치료까지 잘 마쳤다고 칭찬세례를 받으니 금세 형아라도 된 듯한 모양이었다.
기분에 온이는 이미 형아가 되었고, 안과 검사까지 자신 있어했다.
하지만 온이와 유에게 안과는 무섭고 두려운 곳이 되고서야 검사가 끝이 났다.
'아.. 다 좋았는데, 안과 검사실이 왜 암실이었을까, 왜 엄마는 함께 들어가면 안 되었을까, 간호사 선생님은 왜 그렇게 신경질적이었을까.'
그럼에도 감사를 말하게 되는 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