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캠핑
바람이 사정없이 불었다.
가로수는 바람에 신명 나게 흔들렸고, 유는 자유로를 달리는 차속에서 가로수를 보고 말했다.
“엄마 나무들이 신나게 춤을 춰요. 기분이 엄청 좋은가 봐요.”
유의 말에 온이가 말했다. “아니야. 저건 바람이 불어서 나무가 흔들리는 거라고”
지금처럼 나무가 흔들리는 같은 모습을 보고 서로의 생각을 말하는 너희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해준 게 없어도 든든하고 뿌듯할 때가 많다.
어쨌거나 캠핑은 날씨가 8할인데, 내일은 비가 올 확률이 70% 이상. 신명 나게 춤추는 가로수만 봐도 내일이 그려지는 날씨다. 장박이라면 낭만 있는 우중 캠핑이 될 테지만, 철수해야 하는 날 비가 온다면 귀찮은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제는 캠핑을 둘이 아니라 넷이 다니고 있다 보니 혹여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리면 즐겁자고 다녀온 캠핑이 고생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집에 돌아올 때까지 게운치 못한 기분을 달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집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졸다가 깨어보니 경사가 꽤 높아서 체감으로는 직각으로 된 골짜기를 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목적지는 경기도 양주인데 멀리는 산 능선이 보이고 잘 둘러싸인 숲 속. 마치 덕유산 깊은 산속에 들어온 거 같은 느낌이었다. 깨끗하고 쾌적하기까지 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이런 숲 속이라면 일반적인 불편함들 예를 들면 개수대가 멀고, 샤워실이나 화장실이 쾌적하지 못하고 경사가 주는 오르막 등등 불편함으로 따지자면 한 두 개가 아니지만 그런 것쯤은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오는 동안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를 보며 텐트를 최대한 바닥에 묶자는 마음이었는데 웬걸 숲이 바람을 막고 적당히 햇빛을 가렸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우리에게는 오늘 이곳이 최상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텐트를 치는 동안, 온이와 유는 삽과 갈퀴로 땅을 긁어 돌멩이를 모으고, 물을 길어와 그릇에 돌멩이를 가득 집어넣었다가 물을 채웠다. 물 위로 둥둥 뜨는 나뭇잎을 건져내고, 땅바닥에 물을 쏟아부었다.
온이는 쏟아진 돌멩이를 또 다른 그릇에 옮겨 담으며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유는 돌멩이로 탑을 쌓으며 장작불이라고 했다.
땅을 파며 개미를 잡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송충이가 다시 줄을 타고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 호랑나비 배추흰나비를 쫓아 폴짝폴짝 뛰다가 윙윙 날아다니는 벌에 얼음이 되었다. 민들레 한 움큼을 볼 가득 바람을 모아 불었고, 텐트 위를 기어가는 벌레를 털어내고 또다시 밥그릇 가득 돌멩이를 채우고 접시 가득 돌멩이를 쌓았다.
“주문하신 식사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빠와 엄마가 힘을 합쳐 텐트를 치는 동안 온이와 유도 힘을 합쳐 소꿉놀이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준비했다. 기운을 다 쏟아내는 삽질에 지쳐 갈 때쯤 옆 데크에 이웃이 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온이와 유는 같이 놀라고 인사를 시켜주지 않아도, 노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처음 만났지만 원래 알고 지냈던 것처럼 이웃집 누나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그런 온이와 유를 누나들은 곰살맞게도 잘 놀아주었다. 같이 개미도 잡고, 송충이를 주워다 나뭇잎 위에 얹고, 애벌레를 주워 통에 담았다. 캠핑장 어귀에 있는 토끼를 보러 갈 때도 함께했고, 토끼에게 줄 풀을 뜯을 때도 함께했다.
그렇게 온종일 비탈길을 오르내리더니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장작불을 피워 달라며 마른 잔가지를 한 움큼씩 주워왔다. 결국 아빠 손을 잡고 매점에서 장작 한 망과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돌아와 불을 피웠고, 온이와 유는 금세 떨어지는 해와 내려앉는 눈꺼풀을 겨우 참아가며 이른 저녁을 먹었다.
덕분에 아빠 엄마도 오랜만에 장작불 앞에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며 침묵 속에 핸드폰만 만졌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지금 이 시간이 자유롭다 못해 고요하고 평화롭기까지 한 지금을 아빠는 게임으로 엄마는 인터넷 쇼핑으로 만끽했다. 곧 밤이 깊어지고 드디어 머리채를 흔드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비가 오겠다는 확신으로 바뀌자 맥주를 홀랑 털어 넣고 텐트를 제외한 모든 짐을 싸서 차에 실었다.
새벽 후둑후둑 떨어지던 빗방울은 시원하게 쏟아졌다.
이튿날 아침, 빗소리와 함께 텐트를 열고 나가자 기분 좋은 상쾌한 냄새가 훅 밀려들었다. 풀냄새 나무 냄새 흙냄새 모든 게 선명했다. 온이와 유에게 미리 챙겨 온 비옷을 입혀서 밖으로 내보냈다.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바닥은 질퍽이고, 아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이 났다.
풀잎에 몽글몽글 내려앉은 빗방울은 입으로 바람을 불어 털어내고, 웅덩이진 곳에 폴짝 뛰어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땅바닥 위로 기어 나온 지렁이는 나뭇가지로 주워다 나뭇잎 위에 얹어주었고, 이웃집 누나와 우산을 나눠 쓰며 과자를 나눠먹었다.
아빠 엄마는 텐트를 걷느라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고, 온이와 유는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행복했던 올해 첫 캠핑이었다. 젖은 텐트를 베란다에 펼쳐보니 무임승차해온 송충이와 개미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지만 그마저도 재미있는 온이와 유였다.
우리가 좋아해서 캠핑을 다니기 시작한 게 벌써 7년.
아이들이 태어나고 28개월이 되어서부터 함께 한지 올해로 햇수로 3년.
서로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빠 엄마가 어린 시절 캠핑에서 느낀 수많은 기억들을 나눴다.
당시에도 재미있었지만 그 추억을 꺼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리는 같은 표정 같은 감정으로 마주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것처럼 너희의 추억과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던 작은 바람이 묵혀둔 캠핑장비를 꺼내게 했다. 그런데 이미 너희는 함께 노는 방법을 알아가고, 놀잇감이 없어도 놀이를 할 수 있고, 바닥에 기어가는 벌레와 곤충 흙과 돌멩이만 있어도 즐겁고, 캠핑을 좋아하는 다섯 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