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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의 의미

쌍둥이 아들의 열한 살의 기록

by 자잘한기쁨

녀석들의 책가방을 뒤져 보관 파일을 가끔 훔쳐본다.

제때 제출해야 할 동의서라든지, 부모 확인을 받아 가야 할 것들을 당연히 갖고만 다니다가 확인받는 걸 며칠이나 늦는 경우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없을 때 몰래 훔쳐보고는 새침하게 말한다.


"행정정보 동의서 같은 거 부모님 싸인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맞다! 어제 그거 받았는데 까먹었어요"


"아! 맞다!"


물론, 정말 늦게 낼 때는 선생님이 따로 공지를 주시지만, 번거로워지기 전에 엄마가 먼저 부산을 떨었다. 그러자 녀석들은 똑같이 '아 맞다'를 외치고 후다닥 가방에서 동의서를 꺼내 왔다.

이제라도 기억해 내서 다행이라는 녀석들을 보니 엄마는 속이 터져서 잔소리를 얹어야 했다.


"훌륭한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야. 이런 거 놓치는 것도 습관이야. 잘 챙겨, 이제 형님이잖아."

무심하게 보고 태연해지려고 했는데 결국 새침했고, 까칠했다.

남의 집 자식이 그러면 '남자애들 다 그래'라고 말하면서 내 아들이 그러면 복장이 터진다.

'정말이지 내 아들을 남의 자식 보듯 하는 게 쉽지 않다.'

제출해야 할 서류도 확인했겠다, 휴지통 같은 가방 속을 보고 한숨 한번 내뱉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몇 장의 흐트러진 종이 사이에 수업 시간에 했던 활동지가 껴 있었다.

생각을 표현하는 글은 여간해서 보기 힘든데, 활동지를 보고는 짜증이 치솟던 마음이 식고 베시시 웃음이 났다. (그 와중에 휘갈겨 쓴 글씨는 매번 놀랍다.)


아래의 단어 중 몇 개를 골라 정직의 의미를 정리해 봅시다.


[정직, 용기, 거짓말, 손해, 믿음, 후회, 선택, 삶, 갈림길, 약속, 행동, 나침반]


정직이란,

나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때로는 후회할 수 있다.

하지만 후회할 때는 용기 있는 삶의 갈림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글을 보니, 며칠 전 "엄마 나는 논술학원을 좀 다녀야 할 것 같아요. 나한테 필요한 거 같아요"라고 말하던 녀석의 말이 생각났다.

이미 영어, 수학학원을 다니는 것만으로 시간을 너무 잡아먹어서 더 늘리는 건 여러모로 벅찰 것 같았다.


"책 많이 읽고, 엄마랑 마인드맵 하면서 글쓰기를 같이해보자. 엄마가 도와줄게."라고 말을 마쳤는데,

오늘 이 글을 보니 논술학원 당장 다니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마음이 조금 더 컸고,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점점 남의 아들 보듯이 놓아야 할 때가 머지않아 보이는데, 그거야말로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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