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아들의 열한 살의 기록
사실 이천오백 원은 용돈으로 부족한 금액이다.
아직 탄산음료는 못 먹고, 편의점에서 우유 작은 거 한 팩을 사려면 천이백 원.
우유가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다는 걸 완벽하게 깨달은 어느 날 유는 반기를 들었다.
넘치는 것보다 조금 부족하게, 적은 것에 대한 불평보다 그 가치까지도 소중하게 여기길 바랐고, 또 누가 그러더라. 남자애들은 조금 부족하게 키우는 거라고?
‘에이 요즘 세상에 그게 무슨 말이야.’ 싶다가, 주머니에 짤랑거리는 동전 몇 개만 있어도 뽑기에 돈을 쓰는 걸 보면 어쩐지 설득력 있어 보였다.
또 성적 올리기는 어려워도 돈에 관한 건 한 번 올리면 내리기가 어렵다. 요즘 물가만 봐도 그렇지 않나? 계속해서 고공행진만 하고 있는데 용돈이라고 다를까. 더군다나 앞으로는 용돈을 올려줄 일만 남았는데….
엄마로서는 뜬금없지만, 유는 오래 생각한 듯 용돈 인상을 요구했다.
“엄마 용돈이 너무 부족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합리적이에요. 이천오백 원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용돈 올려주세요.”
이렇게 빨리 용돈 협상을 요구할 줄 몰랐다. 더군다나 지금은 용돈 인상 타이밍이 아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마음먹고 뛰면 집에서 학교까지 5분이면 도착하고, 다행인지 아닌지 아직은 너희들의 완벽한 대기조로 있는 상황이다 보니 사실상 용돈 쓸 일이 거의 없다. 나중은 모르겠지만 현재는 구색갖추기 내지는 경제 교육을 위한 것이므로 이천오백 원이면 충분하다는 게 엄마의 결론이었다.
엄마는 용돈 인상에 대한 약간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녀석의 불만과 요구사항은 선명했다. 단호하게 거절만 하기에는 모양새가 빠지게 생겼다.
“네가 용돈 올려달라고 해서 무조건 올려줄 수는 없어. 얼마를 올려주면 좋을지, 그 돈을 어떻게 쓸 건지 계획 같은 걸 써서 다시 이야기하자."
녀석에게 합리적이고 단호한 엄마로 보이겠다는 의지로 말했다.
“아니. 엄마 그냥 말로 하면 안 돼요? 쓰기 귀찮단 말이에요.”
“엄마가 말이야. 나이가 들어서 듣고도 까먹어. 그러니까 네가 한 말을 듣고 나서 나중에 한참 생각하다가 '우리 유가 무슨 말을 했더라?’ 하고 생각이 아득해지면 기억해 내고, 고민하느라 시간이 다 지나가잖아.”
대쪽같이 말하면 녀석의 심기를 건들기만 할 것 같아 건망증을 핑계 삼아, 한발 물러서 보기로 했다.
그런데 녀석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럼, 지금 말로 할게요.”
“엄마가 글로 보고 싶으니까 써오든지, 아니면 없던 걸로 하던지.”
대화를 듣고 있던 온 이는 용돈 인상 가능성 없어 보였던지 유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지 않았다.
용돈을 크게 쓸 일은 없지만, 막상 필요할 때 쓰려면 머뭇거리고 멈춰야 할 만큼인 건 엄마도 알고 있으니까, 유의 투정에 괜한 억지를 부리는 건 어쩌면 엄마인지도 모른다.
‘이천오백 원이면 충분하지, 아니야 부족한 건 맞아‘녀석의 갑작스런 용돈 인상 요구로 엄마도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그래서 엄마도 조금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녀석은 계속해서 감감무소식이라 체념이라도 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뿔싸. 할아버지 집에 간 날 용돈 기입장과 지갑을 달랑달랑 들고 다니다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말했다.
“제가요 용돈을 받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어디에 돈을 썼는지 써야 해요.”
언제나 그렇듯 할아버지 옆에 누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다가 본심을 드러냈다.
“할아버지. 제가 용돈을 일주일에 이천오백 원을 받아요. 근데 제가 갖고 싶은 레고가 있단 말이에요. 근데 그게 십만 원이 넘는데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는 아예 살 수가 없어요. 방법이 없단 말이죠. 그래서 할아버지가 살 수 있게 용돈을 좀 주시면 안 돼요? 그러면 제가 나머지 모아서 살게요.”
딴에는 엄마한테 용돈을 올려달라고 했지만, 퇴짜를 맞은 거나 다름없고, 용돈 인상을 받아봤자 고작 몇백 원 오르는 것으로는 원하는 걸 갖기가 한세월 걸릴 거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자가 귀여워서일까 안쓰러워서일까.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내 녀석들의 손에 쥐여줬다.
돈을 받아 든 두 손은 팔랑거리고, 온이와 유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오~~”하면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몸을 들썩였다.
엄마는 예상치 못한 꼼수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용돈을 통해 자연스러운 경제 교육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장점만 생각했는데, 용돈 인상을 요구할 줄 몰랐고, 한술 더 떠 부족한 용돈을 메꾸려고 할아버지 찬스를 쓸 줄 몰랐다. 한 치 앞을 보지 못한 엄마의 전략은 실패나 다름없었고 뛰는 엄마 위에 나는 아들놈들 덕에 엄마가 조금 더 주도면밀해져야겠다.
갈수록 태산인 육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