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아들의 열한 살의 기록
지난 설날은 특별했다.
이천오백 원의 굴레에서 벗어나 드디어 큰돈을 만질 기회였던지 녀석들은 새뱃돈벼락을 꿈꿨다.
넙죽 엎드려 절하면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쯤은 아는 형님이 되면서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세배하는 게 부끄러워서 몸을 배배 꼬면서도 두 손을 포개 세뱃돈을 받았다.
녀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세뱃돈을 받아 들고 눈을 마주치고 히죽히죽 웃었다. 아무래도 기쁜 마음을 숨기기 힘든 모양이었다.
입꼬리는 올라가다 못해 어쩌면 찢어지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나 기쁠까.
"히히 이걸로 뭐하지. 아~레고를 살까. 건담을 살까."
"난 둘 다 사고 싶은데! 너는 뭐사고 싶어?"
일확천금을 얻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녀석들은 단꿈에 젖은 거였다.
그래봤자. 엄마한테 탈탈 털릴 거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너희가 세뱃돈을 받는 것 곱절로 아빠 주머니에서 새어 나갔지만 그건 너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고, 너희 세뱃돈을 회수하고 싶은 마음은 엄마의 욕심이었다.
용돈을 받으면 엄마 아빠 주머니에 쏙 집어넣던 사랑스럽던 꼬맹이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제 지갑에 차곡차곡 집어넣으며 집에서부터 챙겨간 용돈 기입장에 기록했고,
지갑을 빠트렸을 때는 한 푼도 맡기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삼만 원 맡길게요. 있다가 주세요."라고 말했다.
'녀석들…. 정확한 구석이 있네….'
지금까지 너희가 받은 용돈이 엄마 주머니를 걸쳐갔다면 되찾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빠 주머니로 직행한 덕에 한 푼도 빠짐없이 저축되어왔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반드시. 저금해야 했고 엄마는 그런 너희를 보며 저금하자는 말을 어느 타이밍에 던질까 지켜보았다.
녀석들은 얼마나 신이 났는지 지갑에서 돈을 꺼내 거실 바닥에 한 장씩 깔아놓으며 돈을 세고 있었다.
"와 많다. 이게 다 몇 장이야."
"우리 부자야!! 레고도 사고 건담도 살 수 있겠지?"
히죽히죽 웃으며 바닥에 펼쳐진 지폐를 뚫어져라 보더니 일련번호대로 돈을 정리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돈 세는 방법이지만 녀석들은 행복했고 진지했다.
계속 행복하게 두고 싶은데, 엄마는 아빠가 못하는 것을 해야 했다.
산통을 깨거나 찬물을 끼얹어서 바사삭 꿈을 깨게 해야 했다. (역시 악역은 엄마 담당이지….)
"얘들아 용돈 얼마 받았어?"
"지금 세고 있어요. 엄청 많이 받았어요."
"우와~ 좋겠다! 그럼 저금하고 남는 돈으로 뭐 사면 되겠다. 그치?"
엄마가 정확하게 찬물을 끼얹었는지 녀석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목표한 장난감을 꼭 사야겠는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돈을 뺏길거라는 걸 깨달았는지 빠르게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늦었다는 것도 모르고….
“얘들아, 소득이 생겼을 때 몇 퍼센트를 저금해야 한다고 했지?”
엄마가 무슨 말을 해도 눈을 마주치지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엄마도 그 큰돈이 레고나 건담에 올인 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을 것 같다.'
“있잖아. 사고 싶은 게 정확하게 없는데 나중에 뭔가 사려고 돈을 집에 가만히 두잖아? 그러면 잃어버릴 수도 있는데, 은행에 저금하면 돈을 맡겨줘서 고맙다고 이자를 줘. 공짜로 돈을 더 준다니까?"
묵묵부답이던 녀석들은 이자를 준다는 말에 솔깃했다.
“이자요?”
“응! 내가 맡긴 돈보다 더 줘. 어차피 당장에 쓸 돈이 아니면 은행에 저금하자. 백 원이라도 더 주잖아."
“진짜예요?”
“당연하지!”
“어 그럼 저 저금할게요. 딱 80퍼센트만요”
온 이가 저금한다고 해도, 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 너는? 안 해?”
“괜찮아요”
녀석은 언제부턴가 부정이나 회피를 하고 싶을 때 '아니요.'라는 말 대신 꼭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괜찮아요'는 '저금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의미였다.
“아니야. 그건 괜찮은 게 아니야. 부자가 되려면 80퍼센트는 저금부터 하는 거랬어.”
내키지는 않지만, 부자는 되고 싶어서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럼 저는 70퍼센트만 저금할게요.”
엄마의 강압적인 말투와 부자 가스라이팅에 너희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내밀었고, 엄마는 통장을 보여줬다.
"봐봐 너희가 그동안 받은 용돈을 저금해서 이만큼 모였잖아"
하지만 녀석들은 만질 수 없는 장난감을 눈으로만 보는 느낌이었는지, 개운치 못한 표정에 서운함까지 얹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레고 회사로 흘러 들어갈 돈을 간신히 막았다는 생각에 안도했고, 다정하고 다정한 아빠는 너희의 아쉬운 마음을 읽었다.
"아빠가 온이랑 유가 장난감 사는 데 다 쓰지 않고, 저금도 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부족한 돈은 조금 보태줄게."
결국 아빠 주머니에서는 돈이 더 새고 나서야 시무룩하던 녀석들의 기분이 풀렸다.
"역시 우리 아빠는 짱짱맨"이라며 뽀뽀를 퍼붓기까지 했다.
아빠는 오늘도 짱짱맨으로 다정했고 친절했으며, 엄마는 오늘도 거친 악역을 완벽히 완수했다.
이렇게 가정의 평화가 지켜졌으니 우리. 부창부수 맞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