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다니랴 매일매일 쏟아지는 숙제를 쳐내기 바빠 멍때릴 시간이 없다는 녀석들 말에 엄마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 녀석들이 가방을 벗어 던지고 거실 바닥에 엎드려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다.
녀석들의 유일한 숨구멍을 틀어막으면 너무 가혹하니까, 인심 쓰듯 또 안 본 체하며 시간을 준다.
어느 정도 하다가 스스로 멈추길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엄마의 너무 큰 기대다. 종이접기 하면서 노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해야 할 숙제를 끌어안고 있는 불안감과 시간의 압박은 잔소리가 언제라도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엄마는 입 밖으로 스멀스멀 잔소리가 삐져나오려는 걸 간신히 삼켜내느라 이미 미간에는 내 천 자가 박히고 자꾸만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데 눈치 없는 아들은 종이접기에 열중하느라 엄마의 그런 속마음을 살필 겨를이 없다.
녀석은 암모나이트를 시작으로 공룡 접기에 열을 올렸다.
크기별로 접고 나중에는 화산도 접어 나름 모양을 갖추고 이야기까지 만들어가며 에너지를 쏟았다.
"엄마 제가 엄마가 원하는 공룡 하나 접어 줄까요?"
"엄마는 괜찮아. 종이접기 다 했어?"
"아니요."
"얼마나 더 거릴 거 같아?"
종이접기가 끝나는 순간 숙제를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다.
녀석은 밤을 새우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오디오북 들으면서 하는 종이접기인데 엄마가 섣불렀다.
"조금 더요. 아, 엄마 원하는 공룡 하나 접어줄게요. 골라보세요."
당연한 대답이었다. 내가 이 당연한 대답을 들으려고 참고 또 참아내고 있었다.
어차피 노는 거 기분이라도 맞춰주자 싶은데 마음의 반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먼저가 아니라고! 해야 할 일을 먼저하고 놀라고! 숙제 미뤘다 하면 졸린다고 짜증 내면서 하다가 결국 혼나서 울 거잖아! 그러니까 지금 할 일을 먼저 하라고!' 마음속으로 고요하게 외치면서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공룡 책을 펼쳤다.
"응 한 번 볼게."
"엄마, 엄마는 이 중에 엄마를 닮은 공룡은 어떤 거로 생각해요?"
"엄마 닮은 공룡?"
"네"
"공룡은 사납고, 포악한데…. 공룡 중에 골라야 해?"
"엄마가 아는 공룡 중에 골라봐요."
"그럼 네가 특징을 좀 말해줘"
"음…."
"엄마는 네가 골라주면 더 좋을 거 같아"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너희의 유아기를 공룡과 함께 보내느라 엄마도 풍월을 읊게 됐다. 하지만 간신히 참아내고 있는 잔소리는 말을 더 할수록 쏟아지니까 말을 아껴야 했다.
"엄마는…. 음…. 기가노토사우루스예요. 힘은 세지 않지만,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고"
묘하게 엄마 흉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아빠는 어떤 공룡이야?"
"아빠는 당연히 티라노사우루스지. 기가노토사우루스한테 당하는 티라노"
후회는 종종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는데…. 너는 이제 말을 잘못한 대가로 종이접기를 멈추어야 했다.
"기가노토사우루스까지만 하고 얼른 숙제해. 엄마 많이 기다렸어."
"네…."
눈치가 생겼으면 좋겠다.
아들의 눈치는 도대체 언제쯤 장착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