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아들의 열한 살의 기록
베란다에 놓여 있던 빈 화분에서 싹이 텄다.
‘빈 화분에서 어떻게 싹이 날 수 있지?’
‘씨앗이 날아온 걸까? 우리 집은 20층인데...’
‘집 안 다른 화분에서 옮겨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생겨난 건지 모르겠다.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없지만, 애정 없이도 혼자 자란 그 생명이 귀해서 물도 주고, 햇볕이 잘 들도록 화분도 돌려두었다. 여느 날처럼 작은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데, 온이가 물었다.
“엄마, 뭐해요?”
“응, 화분에 물 주고 있어.”
온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싹 났네?”
“응.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겠는데 싹이 텄어. 신기하지?”
“엄마, 이거 제가 주워 온 거예요.”
“그래? 엄마는 심은 적이 없는데 싹이 나길래, 어디서 날아왔나 했어.”
'날아온 게 아니라, 온이가 심은 거였다니. 그동안 엄마는 왜 몰랐던 걸까..'
“영어학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무 밑에서 죽어가는 애가 있는 거예요. 너무 불쌍해서 흙을 살살 털어서 젤리 봉지에 담아 왔어요.”
영어학원을 마치고 지나는 그 길목은 건물 사이로 햇빛이 드문드문 들었다가 사라지지만, 바람은 하루 종일 스며드는 ‘바람의 거리’였다.
바람을 피할 수 없어서 늘 몸을 움츠리고 바닥을 보게 되는 길.
온이는 그날도 움츠린 채 바닥을 보며 걷다가, 가로수 아래 연약하게 피어오르던 작은 싹을 발견했던 것이다.
늘 춥고 어두웠던 그 길에서 애쓰는 생명이 가여워, 맨손으로 살살 흙을 파 담아 온 것.
아무도 모르게 심었던 싹이 완전히 뿌리 내린 걸 본온이는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 싹이 누워서 자라는 거 같은데 지지대를 세워줘야겠어요. 어떤 꽃이 필지 너무 기대되요!"
이름 모를 그 작은 싹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오늘,
엄마는 작은 풀 한 포기도 귀하게 여긴 온이의 따뜻한 마음이 예쁘고 소중해서
옆으로 누운 듯 자라는 그 싹이 아무리 잡초처럼 보여도 차마 잡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네가 귀하게 여기는 건 잡초라도 귀하게 여겨야 하니까.. 엄마는 가만히 그 잡초가 잘 자라게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