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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시간은 새벽 다섯 시 반.

by 자잘한기쁨

새로운 달이 시작되기 전, 거실 달력에 새벽 복사 일정을 동그라미 치면서 눈으로 보고 익히고 입으로 말한다.

녀석들의 귀에 쏙쏙 박히라고, 깜빡하는 내 머릿속에 새겨 넣듯이, 또 철저히 계획형인 남편에게 공유하고 나면 반드시 지켜지니까 몇 번의 안전장치를 만드는 셈이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달력에 쓰인 날들을 잊지 않으려 방과 방 사이를 오갈 때마다 눈으로 그렇게 익히는데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것도 완전히.


녀석들의 등교 준비를 재촉하다가 벽시계 아래에 걸린 달력을 보고는 까무러칠 뻔 아니 까무러치고 말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헉' 하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자마자 몸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심장은 또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 현기증이 나고, 귀에서는 삐-하고 소리가 울렸다.

순간 귀가 먹먹해지고, 머리는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새벽 복사를 시작한지 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형 사고를 쳤다는 것도 모르고 오전 8시가 되어서야 알아채다니…. 온몸이 경직되는 것 같았다.

상상해 본 적 없던 일,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달력을 잘못 본 거라고 눈을 끔뻑거리며 부정했다.


그 모습을 본 유가 물었다.


"엄마, 왜 그러세요?"


"오늘 너 새벽 복사였어…."


"네? 아! 맞다! 어떡해요…."


녀석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목소리까지 흔들렸다.

새벽 미사가 있는 날이면, 엄마나 아빠는 다섯 시 반에 성당에 도착하려고 대부분 자는 둥 마는 둥 긴장 상태로 날밤을 새웠다.

또 녀석들은 새벽 5시에 눈을 비비고, 머리에 지은 까치집을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눈을 반쯤 감은채 현관문을 나섰다. 고맙게도 군말 없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묵묵히 해왔다.

칠흑 같은 어둠을 걸어갈 때도, 여름의 푸르스름한 새벽 속으로 걸어갈 때도 투정 한번 없던 녀석도 적잖이 놀랐다.

주방으로 가던 나도 멈추었고, 옷을 입으려던 녀석도 멈추어 선 채로 얼굴을 마주 보며 말했다.


"어떡하지?"


"어떡해요?"


엄마는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생각이 멈췄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유는 제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엄마, 죄송해요. 제가 할 일이니까 제가 챙겼어야 했는데 늦잠을 자서.."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 챙겨야 했는데…."


까불이는 어디가고 마치 시근이 든 것처럼 대견하게 말했다.

또 한편으로는 안 깨워준 엄마 탓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엄마 탓이 아닌, 깜빡한 자신을 탓하던 너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이 와중에 감사한 건 그 누구도 서로를 탓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실수로 생각하고 서로 미안하다고 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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