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듯 등하굣길에 꼭 들르던 집 앞 문구점이 문을 닫는다.
아니, 닫았다.
우리 집 녀석들의 자잘한 일상이 담겨 있던 곳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지금의 내 아이들처럼, 나도 문방구에서 불량 식품을 사 먹고, 뽑기를 했던 어떤 하루들이 추억으로 남은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추억이 쌓여가던 소중한 곳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문득 꺼내보는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하고 좋았었다.
어른의 눈에는 시답잖은 물건이지만, 녀석들에게는 백화점이나 다름없는 문방구에는 갖고 싶은 것도 재미있는 것도 넘치게 많았다.
그때의 내가 문방구 집 아들이 부러웠던 것처럼 우리 집 두 녀석도 문방구 집 딸이 부럽다고 했다.
세월은 변했어도 녀석들은 내가 어렸을 때처럼, 엄마 몰래 불량 식품도 사 먹고, 구경할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문방구를 수시로 들락거렸다.
마음속으로 찜해둔 물건이 그대로 있는지 등하굣길에 들락거리며 확인했다. 그렇게 용돈을 모은 어느 날에는 동전 뭉치를 내밀어 문방구 주인아줌마와 동전을 세어가며 물건을 바꿔왔다.
"죄송해요. 애들이 용돈 모은 걸로 사느라 죄다 동전이에요."
"괜찮아요! 저희도 동전 필요한데요."
아이들을 상대로 해서인지 문방구 주인도 아이들에 대한 배려도 늘 따뜻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자잘한 순간들이 추억이 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도 그런 문방구가 집 앞에 있다는 게 참 좋았다. 그런 문방구가 사라지다니…. 녀석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도 아쉬움이 컸다.
어제까지는 아쉬움 가득했던 온이가, 오늘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형광펜 몇 자루 볼펜 몇 자루를 꺼내며 말했다.
"엄마 문방구에서 물건을 다 정리해야 해서 필요한 거 있으면 공짜로 가져가라고 하셨어요"
"공짜라고 다 가져오면 안 돼. 꼭 필요한 만큼만 가져와야지."
"그래서 내꺼랑 유꺼랑 형광펜 색깔별로 세 자루, 볼펜 세 자루만 가져왔어요. 다른 애들은' 쓸어 담아! 다 가져가자' 했는데 필요한 만큼만 가져왔어요."
가게를 정리하는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흔쾌히 나눔을 해준 주인아줌마의 마음을 아이들도 조금은 헤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방구 사장님이 팔려고 돈 주고 샀던 거잖아. 그러니까 나눠주셔서 감사하다고 너희도 고마운 마음을 전했으면 좋겠어."
녀석들은 간식 서랍을 열어 주섬주섬 챙기면서 '이건 좋아하시려나' '이건 괜찮을까'하고 고르다 작은 두 손에 간식 꾸러미를 챙겨서 나갔다.
"엄마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오면 되겠죠?"
"응 조심해서 다녀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러 갔던 녀석들은 다시 또 초코과자를 한아름 안고 왔다.
"엄마, 사장님이 우리가 고맙게 생각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과자를 또 주셨어요. 안 받아도 된다고 했는데 꼭 가져가라고 해서…."
그렇게 며칠이 흘렀을까, 유가 말했다.
"엄마 저는 무인 가게가 싫어요. 거기 가면 꼭 감시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필요할 때 언제든 살 수 있는 곳이지만, 정직하게 행동해도 괜히 쳐다보는 눈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편리하고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니까 사장님도 안전장치가 필요한 거지. 내가 정직하게 행동하면 괜찮아."
"아는데 좀 그래요."
사실 나도 그랬다.
내가 물건을 살펴보려고 들어 올리는 순간 감시당하는 듯한 느낌, 분명 떳떳하게 행동했는데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오해받을지도 모른다는 찜찜함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래서 나는 무인가게보다 사람과 대면하는 가게를 선호하는데 녀석도 그런 모양이었다. 사람을 마주 보며 고를 수 있는 보물 상자 같은 곳이 문을 닫은 게 새삼 더 아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