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서 좋은 날
‘유치원을 보낼까?’
‘미세먼지도 없고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은데 놀러를 갈까?’
애들이 유치원을 안가면 내가 너무 긴긴 하루가 될 것 같고,
애들이 유치원을 가면 당분간 없을 이런 날씨가 너무 아까울 것 같고,
몸이 편하자니 마음이 불편하고, 마음이 편하자니 몸이 피곤할 것 같아서 쉽사리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등원차량이 다가올 시간이 되어서야 결국 자차등원 하겠다는 연락을 남기고, 온이와 유에게 물었다.
“온아, 오늘 유치원에서 인형극 한다는데 유치원 갈 거야?”
“네! 당연히 가야지요.”
“유야, 오늘 유치원에서 인형극 한다는데 유치원 갈 거야?”
“아니. 엄마랑 놀고 싶은데.”
“그럼 유야. 온이는 유치원 간다고 하니까 유치원 데려다주고 오늘은 우리끼리 놀러가는거 어때? 대신에 내일은 엄마가 온이랑 놀고 유는 유치원 가는거야”
유는 얼굴에 꽃이 피듯 활짝 웃었다. 그리곤 “엄마랑 나랑? 둘이? 이거 비밀이야?” 하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는 온이에게 달려가 “유치원 가자! 빨리~” 재촉했고, 덕분에 나도 외출준비를 빨리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준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오자 마자 유가 말했다.
“엄마 온이도 유치원 안가기로 했어요.”
“응? 왜?”
“어, 내가 온이한테도 말해줬어요. 유치원 가지말고 우리 셋이 놀러가자고요”
“아 그랬구나.. 오늘은 유랑 엄마가 데이트하고, 내일은 온이랑 데이트 하려고 했는데 그럼 오늘 우리 셋이 함께 놀까?”
“네! 다 함께 노는게 더 좋아요.”
사실, 쌍둥이라서 매일 같이 있다보니 온이와 유에게 온전히 집중해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온이와 유 각자에게 집중해주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에 언젠가부터 해보려 했지만, 눈에 밟히고 마음이 쓰여서 엄두조차 못했던 것을 오늘 해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딴에는 큰 맘을 먹었던 거였는데 온이와 유가 함께 하는게 좋다고 하니 몸만 피곤하면 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더 가벼워졌다.
별 생각없이 기왕이면 궁금해하던 걸 보여주자 싶어 경복궁을 목적지로 정했다.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다섯 살 둘을 데리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것도 만만치 않았다.
보도블럭 사이에서 피어난 꽃도 살펴야하고, 과일가게 참외도, 외식했던 고깃집도 발이 닿고 시선 닿는 곳마다 할 말이 많아서 어른 걸음으로 7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30분도 넘게 걸렸으니 지하철역을 목전에 두고 지쳐서 그만가고 싶다는 유의 말이 참 반가웠다.
더 멀리 가기전에 더 지치기전에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는게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걸어오는 동안 줄곧 해왔던 터라 정말이지 고맙기까지 했다.
“엄마 지하철을 타지 않으면 못가요?”
“아니 다른 방법으로 갈 수 있어. 엄마차를 타고 가거나, 버스를 타고 가거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가 말했다.
“엄마 엄마, 저기 있는 표시가 지하철이라는 표시예요?
“응”
“그럼 힘들어도 갈래요! 지하철 타고 갈래요”
아빠는 매일 지하철을 타러 이 길로 걸어갔었냐고 묻던 온이.
그리고 매일 지하철을 탔었냐고 묻던 유.
아빠는 얼만큼 가서 내렸냐 묻던 온이.
아빠도 같이 갔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던 유.
놀러가는 길에 아빠를 떠올려줘서 고마웠다. 아빠가 들으면 얼마나 좋아할까.. 다 기억도 나지 않는 무수한 대화속에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광화문역 9번출구에서 계단을 오르자 제일 먼저 보이는 북악산을 보고 온이와 유는 정말로 산을 처음 보는 아이들처럼 “우와~ 산이 정말 높다!”며 총총 뛰었다.
지하철을 탔던 것도 광화문을 온 것도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아이들은 오늘이 처음으로 기억되는 것 같았다. 신나서 뛰다가 잔디밭을 보자 온이와 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곤 집에서 챙겨왔던 온갖 잡동사니를 다 꺼내 색칠놀이도 하고, 시장놀이도 하고 돌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놀았다.
앉아서 놀다가 지루해지면 걷고, 걷다가 힘들면 앉아서 놀고 그렇게 경복궁을 지척에 두고 긴 광화문 광장에서 긴긴시간을 보냈다.
해가 정수리에 떠있는 완벽히 더운시간. 온이와 유는 신호등만 건너면 닿을 광화문을 보고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아이들에 눈에 비친 광화문이 어떠했는지는 아이들의 표정과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엄마 경복궁에 가면 진짜 왕이 진짜 살고 있어요?”
“엄마 엄마, 왕이 지나가는 길에 내가 걸어가면 어떻게 되요? 혼나요?”
“어린이박물관에 가면 진짜 재밌겠죠? 어떤거 있을까요?”
“근데 엄마 저번에 문 지키고 있던 아저씨들이 없어요.. 왜 아저씨도 없고 문도 닫혔죠?”
그랬다. 온이와 유의 마지막 질문에 엄마도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한번도 광화문이 닫혀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휴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오늘. 화요일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한 댓가가 아이들에게 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엄마 역시 경복궁에서 오후시간 보내려했던 계획이 무너지면서 온이와 유가 말하는 모든 궁금증이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허점투성이 엄마의 무계획 소풍이 조각나고 있는데 온이와 유는 광화문이 왜 닫혀있는지 이제야 알겠다는 듯 말했다.
“엄마 봐봐요. 여기 큰 돌이 문을 막고 있어서 문을 못여는 거예요. 우리가 돌을 치우면 문이 열려서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요. 한번 밀어볼게요”
온이와 유는 꿈쩍도 하지 않는 돌을 의기투합해서 힘껏 밀었다. 힘주어 미는데 밀리기만 하는녀석들 모습에 엄마는 마냥 귀여워서 웃음이 나는데, 땡볕에서 오전 나절을 다보내고 기대가 사라진 아이들은 금새 지쳐버렸다.
온이는 목이 마르다고 짜증이 났고, 유는 지쳐서 못걷겠다고 짜증이 났다. 오직 경복궁만을 계획하고 왔는데, 둘을 데리고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도 못잡고 주춤하는 사이 온이와 유는 개미를 잡느라 보도블럭을 기어가고 있었다. 뛰어다니지 않고 바닥을 기어 개미를 쫓는 것 만으로도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주었다. 그리고 그 시선 끝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보였다.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가야할 목적지가 생긴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엄마 여기는 어디예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야”
“엄마 역사는 뭐예요?”
“옛날을 지나온 시간을 역사라고 하는데. 나중에는 오늘도 역사가 될 수 있어”
“그러면 여기는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예요?”
“응 말하자면 그런거지”
“엄마 그런거가 뭐예요?”
꼬리를 무는 질문에 엄마는 입이 말라갔다.
한글은 몰라도 분위기가 주는 느낌으로 온이와 유는 어린이박물관에 주도적으로 입장했고, 어린이박물관에 입장하고는 더 이상 엄마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길고 길었던 오늘. 엄마에게만 길었던 하루가 아니었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잠든 온이와 유를 깨워 겨우 집에 도착했을때 기대했던 경복궁은 아니었지만 엄마랑 같이 함께 놀아서 재미있고 좋았다는 녀석들에게 다음번엔 진짜 경복궁을 가자고 약속했다.
기다려요 경복궁. 투 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