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아 루나 2 - 히로 11

Giro 11

by 양희범

"자윤 교무님의 말씀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께 깊은 울림이 되었을 것 같네요. 솔직한 말씀, 그리고 용기 있는 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이 길을 걸으며 마음공부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죠. 자신의 마음을 알아야 삶을 바꾸고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그 바탕 위에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자, 그럼 이제 질의응답을 받아보겠습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계실까요?"


연훈은 평소보다 말이 길었다. 무언가를 수습하려는 기색이 비쳤지만, 자윤은 흔들림 없이 객석을 둘러보았다. 솔직한 발언의 여운 때문인지 관객들의 눈빛도 경이로웠다.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고, 그 순간 그녀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자윤이 빙그레 웃었다. 신경 쓰지 말라는 듯한, 안심시키는 미소였다.

보통이라면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변한 건 그녀였고,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건 나였다. 부끄러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충동이 치밀어 올라, 생각할 틈도 없이 손을 들었다.


연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잠시 자윤을 바라봤다. 아마 수호를 제외한 다른 이들도 이 상황을 대강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연훈도 자윤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평소에 여유롭던 그마저도 지금의 상황은 예상 밖이었던 모양이다.

자윤은 연훈의 시선을 받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훈이 찰나 굳은 표정으로 생각을 정리하더니 이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오신 분들, 질문이 정말 많으시네요. 유독 눈에 띄는 분이 계십니다. 저기, 중간에 계신 분. 네, 이번이 마지막 질문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스태프가 마이크를 건넸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 마이크를 입가에 대고 말했다. 천천히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입을 열었다.


“… 정말로 사랑이 소유가 아니라면, 그리고 그 사람의 선택을 온전히 믿어주는 게 사랑이라면,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될 가능성조차도 우리가 놓아줘야 하나요?”

장내가 가라앉았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놓아주는 일, 그의 삶을 존중하는 일… 이해는 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언젠가 다시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될 가능성마저도 미리 닫아버리는 게 맞나요? 그때도 그저 기도만 해야 합니까?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숨을 몰아쉬었다. 마이크를 잡은 손에 땀이 배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나조차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묻고 싶었다. 사랑이 진정 그렇게만 흘러가야만 하는 감정인지, 기도만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감정인지, 인정할 수 없었다.


자윤은 잠시 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랑의 형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은 간결했지만, 너무나도 무거웠다. 장내에 다시 적막 흘렀다. 그녀는 이제 정말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얼떨떨한 기분과 함께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녀라면 내가 가진 문제의 해답을 알 것만 같았다. 이제 그녀에게 물어야 할 때였다. 정적이 길어지기 전에 다시 입을 뗐다.


"마지... 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드려도 될까요?"

막상 입을 뗐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녀 앞에서 또 다른 치부를 꺼내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거기에 이미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상태라 부담스럽기도 했다. 만약 그녀가 이 질문을 거절한다면, 조용히 물러서야 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좋아요, 한 번 말씀해 보세요."

자윤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 따뜻해 울컥했다.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하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제 실수로 그에게 실망을 안겼습니다. 교무님은 기도로 문제를 건너야 한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요?”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하듯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가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할까? 나를 어떻게 볼까?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녀의 그 미소가 나를 이해해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묵묵히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들었다.

"어떤 실수를 하셨죠?"

그녀가 짧게 물었다. 그러나 그 짧은 질문 속에는 모든 치부가 다 들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렇게 공개된 자리에서 그녀에게 이 질문을 한 것을 후회했다. 이해를 바랐는데, 그녀는 내게 발가벗으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 사람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것이 연애 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파트너십의 신뢰를 저버렸다. 그런 내가 스스로 실수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됐다.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잘못을 지금 자윤 앞에서 이야기해야 했다. 여기에는 수호도 있었고, 직장 동료들도 있었으며,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도 있었다.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자윤이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엔 어떤 비난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의 기다림에도 아무 말도 못 하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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